Katherine : 

  There's no bathroom for me here.

  여기엔 제가 쓸 화장실이 없어요.

 

Harrison : 

  What do you mean there is no bathroom for you here?

  여기 자네 화장실이 없다니?

 

Katherine : 

  There is no bathroom.

  여기엔 화장실이 없어요.

 

Katherine : 

  There are no colored bathrooms in this building 

  or any building outside the West Campus, 

  which is half a mile away.

  Did you know that? I have to walk to Timbuktu just to relieve myself.

  And I can't use one of the handy bikes.

  Picture that, Mr. Harrison.

  My uniform... Skirt below my knees, my heels, and a simple string of pearls.

  Well, I don't own pearls. Lord knows you don't pay coloreds enough to afford pearls!

  And I word like a dog, day and night, 

  living off of coffee from a pot none of you wanna touch!

  So, excuse me, if I have to go to the restroom a few times a day.

  이 건물엔 흑인 화장실이 없어요. 

  웨스트그룹 다른 건물에도 없어요.

  800 m 거리라는 거 알고 계셨어요?

  그 먼 거리를 볼 일 보러 걸어서 가야해요. 자전거도 쓸 수 없어요.

  상상이 되세요? 본부장님?

  근무복은, 무릎 아래에 힐도 신어야 하고. 진주 목걸이라뇨?

  진주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거 살만한 급여를 흑인들은 받지 못해요!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요. 

  커피 포트 손대는 건 전부 꺼려하고요!

  그러니 양해 바랄께요, 하루에 몇 차례 화장실에 가는걸요.

 

Harrison : 

  There you have it.

  No more colored restrooms. No more white restrooms. 

  Just plain old toilets.

  Go wherever you damn well please. Preferably closer to your desk.

  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

  이제 됐네!

  유색인종 화장실은 이제 없어. 백인 화장실도 마찬가지. 그냥 평범한 화장실뿐.

  급할 땐 어디든 가. 사무실에서 가까운 쪽으로.

  나사에선, 화장실 구분은 없어!

 

 

Katherine Johnson. Mary Jackson. Dorothy Vaughan.

 

 

John Glenn successfully completed three of a scheduled seven orbit fight.

존 글렌은 예정된 7바퀴 궤도 비행 중 3바퀴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His Friendship 7 Mission turned the tide in the space race, propelling NASA to the moon in 1969.

프렌드쉽 7 임무는 우주 경쟁의 절정기에 동력이 되어 나사가 1969년 달에 가도록 이끌었다.

 

Mary Jackson became NASA's... and America's first female African-American aeronautical engineer.

In 1979, she was appointed Langley's Women's Program Manager, where she fought to advance women of all colors.

메리 잭슨은 나사 뿐 아니라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항공 엔지니어가 됐다.

1979년 랭리 여성 프로그램 관리자로 임명됐고 모든 인종의 여성들 권익을 위해 힘썼다.

 

Dorothy Vaughan became NASA's first African-American Supervisor.

As a Fortran specialist, on the frontier of electronic computing, she wa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brilliant minds at NASA.

도로시 반은 나사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관리자가 됐다.

전자 연산이라는 미개척지 분야의 포트란 전문가로서 그녀는 나사의 최고 수재 중 한 명으로 인정 받았다.

 

Katherine Johnson went on to perform calculations for the Apollo II mission to the moon and the Space Shuttle.

In 2016, NASA dedicated the Katherine G. Johnson Computational Building in honor of her groundbreaking work in space travel.

At the age of 97, Katherine was awarded 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and celebrated her 56th anniversary with Jim Johnson.

캐서린 존슨은 달 관련 아폴로 II 임무와 우주 왕복선의 전산원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2016년 나사는 우주 여행 분야에서 그녀의 획기적인 업적을 기려서 '캐서린 존슨 전산동'을 헌정했다.

97세 나이에 캐서린은 대통령 훈장을 수상했고 짐 존슨과의 56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했다.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감독 : 데오로드 멜피

출연 : 타라지 P. 헨슨(Taraji P. Henson) - 캐서린 존슨, 옥타비아 스펜서(Octavia Spencer) - 도로시 본, 자넬 모네(Janelle Monae) - 메리 잭슨

드라마, 2017

 

 

 

[원문] 사람과산 2019 09월호 (Vol. 359)

 

해외등반_ 아프리카 최고봉 탄자니아 킬리만자로(5,895m)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 우후루 피크(5,895m) 등정에 성공한 신차원정대!

킬리만자로 신차원정대

"누나... 춥고 배고프고 졸려요..."

"하섭아, 안 되겠다. 우리 그냥 버스 탈까?"

새벽 4시, 35km 지점을 막 지난 지점이었다. 터덜터덜.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도 연신 감겼다. 엎친 데 덮친 격, 몇 해 전 부상이 있었던 발목까지 시큰거려오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회송 차량에 몸을 실었다. 킬리만자로 원정을 한 달여 앞두고 마지막 훈련 및 단합을 위해 참가한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 대회(66km 코스)'에 나간 우리는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훈련에서 삐끗한 이후, 우리는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지고 남은 기간 더 열심히 체력 훈련을 했다.

 

대망의 출국일, 공항에서 둘만의 조촐한 출정식을 했다. 신하섭의 '신', 차승준의 '차' 두 명뿐인 대원의 이름을 따서 '킬리만자로 신차원정대'로 작명하고 지인들에게 등반 계획 보고와 짤막한 인사말을 남겼다. 자동차 판촉 행사 같은 다소 촌스러운 원정대 이름을 가지고 드디어 킬리만자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산에 대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산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짐과 더불어 산을 향한 꿈도 꼬리를 물며 다양해졌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7대륙 최고봉에 올라보고 싶다는 꿈이 스멀스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 여정의 첫걸음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택했다.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운행기록

일정 등반 운행(고도) 숙영지
1일차

오전: 장비 점검 및 일정 시뮬레이션
오후: 운행

10km
(1,800m~3,000m)

마차메 캠프
(Machame Camp, 3,000m)

2일차

오전: 운행
오후: 휴식 및 고소적응 하이킹

6km
(3,000m~3,800m)

시라 캠프
(Shira Camp, 3,800m)

3일차

오전: 운행 (라바타워, 4,630m)
오후: 운행 (고소적응 후 고도 낮춰 숙박)

10km
(3,800m~4,630m~3,900m)
바란코 캠프
(Baranco Camp, 3,900m)
4일차 오전/오후: 운행

10km
(3,900m~4,673m)

바라푸 캠프
(Barafu Camp, 4,673m)
5일차

(자정부터) 야간 운행 후 정상 등정
오후: 하이캠프 휴식 후 하산

17.5km
(4,673m~5,895m~3,100m)

음웨카 캠프
(Wmeka Camp, 3,100m)
6일차

오전: 하산 완료
- 음웨카 게이트(Wmeka gate, 1,900m)

10km
(3,100m~1,900m)
 

 

평화로운 시라 캠프(Shira Camp, 3,800m) 전경

폴레폴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리아! 폴레폴레"

"오케이 오케이"

가이드 필벗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폴레폴레'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뜻으로, 고산 등반 경험이 많지 않은 등산객들이 초반 오버 페이스로 등정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현지 가이드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넷째 날까지 하루 평균 10km (고도차 800~1,200m)를 이동하며 별 탈 없이 운행 계획에 맞는 평화로운 등반이 이어졌다. 이전에 5,000m가 넘는 등반지를 대원으로서 오른 경험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계획 수립부터 루트 선정까지 인도어 클라이밍 시뮬레이션을 모두 도맡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그저 감사했다.

 

여유 있게 시라 캠프에 도착해 함께한 멤버들과 가무를 즐기며 팀워크를 돈독하게 쌓았다.

 

마지막 캠프를 향해 이동 중인 신차원정대 앞으로 포터들의 기나긴 이동 행렬이 펼쳐져 있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입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포터를 동행해야 한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 관목 지대, 알파인 사막, 만년설 빙하 지역까지 아프리카의 생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면 구름과 대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매일 밤이면 하늘을 바라보며 남반구의 별들이 나에게 쏟아지니 황홀경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등정 전야, 그날 저녁 바라푸 캠프(Barafu Camp, 4,673m)에는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신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지금 이 순간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자!"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꼴깍꼴깍 침 삼키는 소리와 차갑고 메마른 바람만이 공간을 묵직하게 채웠다. 잠시 후 모두의 함성이 울리며, 정상을 향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가자 킬리만자로!! 와아!!"

 

신차원정대가 알파인 사막 지대에 접어들었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 관목 지대, 알파인 사막, 만년설 빙하 지역까지 아프리카의 생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킬리만자로 바라푸 캠프(Barafu Camp, 4,673m). 정상 공격을 시도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캠프.

 

극한의 추위, 우후루피크 등정

 

"하아... 너무 추워..."

"누나, 여기 따뜻한 물 마셔요."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영하의 추위에 팔다리의 감각이 무뎌져 갔다. 나도 모르게 걷다 주저앉길 반복했다. 하섭이가 건넨 레몬과 꿀을 탄 따뜻한 물을 마시며 잠시 몸을 녹였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만 버티면 곧 나아질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악물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자동으로 폴레폴레가 되었다.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 5,745m) 직전,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못 볼 인생의 일출이었지만 극한의 추위 속, 가만히 서서 아름다운 일출을 바라볼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오전 7시 20분, 드디어 정상 우후루 피크(5,895m)에 도착했다. 정상부는 만년설은 많이 줄어있어 일부 지역만 눈이 덮여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높은 곳인 킬리만자로 정상에 다다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줄 알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내려가야지...'였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밤새 체온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상당히 소진한 탓에 몸도 마음도 하산을 재촉했다. 정상 등정 인증 사진을 찍고 출발점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노 모어 폴레폴레"

가이드가 더 이상은 천천히 걷지 말고 빨리 가라고 지시했다. 비몽사몽 졸음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하산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밤의 베이스캠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급기야는 술 취한 사람마냥 휘청휘청 걸으며 만신창이로 가까스로 캠프에 도착했다. 텐트 도착 직후,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돌아오고 눈을 뜨니 가이드가 다시 하산을 재촉했다. 곧바로 음웨카 게이트(Wmeka Gate)까지 운행을 시작했다. 이튿날이 돼서야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킬리만자로 바란코 캠프(Baranco Camp, 3,900m) 뒤로 정상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등정 인증서가 손에 쥐어졌다. 신차원정대, 킬리만자로 등정 성공! 고산에서 내려오니 세상은 참 살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킬리만자로에서 보낸 일주일을 돌아보니 등정의 기쁨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더 감사한 날들이었다. 등반 중에는 식수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당연히 전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 휴대폰은 여러 개의 보조배터리를 아껴가며 사진을 찍는 용도로만 소중히 사용했다. 매일 아침 한 잔씩 마시는 커피도, 내 것 인양 공기처럼 사용하는 빛과 전기도, 양치할 때 콸콸 틀어놓는 깨끗한 수돗물도,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었다. 산에서는 모든 것들이 정말 귀중한 자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다시금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를 배경으로 운행 중인 신차원정대. 고도가 오르면서 점차 얼굴이 붓고 피곤한 모습이다.

 

 

진정한 동물의 왕국

 

킬리만자로 등정을 마치고 혹시나 싶어 남겨두었던 이틀의 여유 일정은 어린 시절 동물의 왕국에서만 보던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들을 대자연에서 직접 만나는 데 쓰기로 했다. 나는 공인된 가이드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타랑기레(Tarangire) 국립공원과 응고롱고로(Ngorongoro) 국립공원 두 곳을 돌아보는 투어를 예약했다. 사파리 투어 예약은 현지 트레킹 여행사에서 정보를 찾아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타랑기레(Tarangire) 국립공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정차한 지프차 위에서 풍광을 즐기고 있는 필자.

 

지프를 타고 국립공원 내부로 진입하니 살아 숨 쉬는 '라이온 킹'의 영화 캐릭터들을 만난 것 같았다. 지프차가 다가가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원숭이와 코끼리,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는 얼룩말과 마사이 기린, 평원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이동하는 버팔로 무리까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생생한 풍경이 펼쳐졌다. 방금 사냥한 먹잇감을 들고 창공을 맴도는 맹금류가 머리 위로 맴돌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사자와 치타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여기가 현실인지 영화 속인 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방금 사냥한 먹잇감을 들고 창공을 맴도는 위세 등등 맹금류.



두 마리의 누(Wildebeest)가 서로 시비를 걸며 투닥거리다 자리를 뜨려던 지프차의 시동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흑백의 매혹적인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이 슬픈 눈으로 무언가를 응시 중이다. 배가 고픈 걸까?



사랑에 빠진 듯 정겹게 나란히 초원을 거니는 두 마리의 얼룩말.



익살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는 사바나 원숭이. 나무 위에서 너무도 편안하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은 사실이 아닐 것만 같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무더위를 피해 물웅덩이에 모여 몸을 식히고 있는 코끼리 가족.

 

INFO_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5,895m)는 스와힐리어로 '반짝이는 산'이라는 뜻이다. 탄자니아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 최고봉으로 암벽 및 빙벽 등반 없이 도보만으로 정상인 우후루(Uhuru)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다. 1년 내내 입산이 가능하지만, 건기인 1~2월과 7~9월이 등반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다.

 

정상까지 등반 가능한 루트로는 마랑구(Marangu), 마차메(Machame), 롱가이(Rongai), 레모쇼(Lemosho), 시라(Shira), 음브웨(Umbwe) 등의 루트가 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는 마랑구 루트로, 일명 코카콜라 루트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코스다. 마랑구 루트는 산장에서 숙박하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필자와 신하섭 대원은 킬리만자로 만년설 봉우리를 바라보며 걷는 일정이 많은 마차메 루트를 선택했다. 마차메 루트는 캠프에 머물며 텐트 숙박으로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다.

 

 

글·사진  차승준

 

[원문] 사람과산 2019 09월호 (Vol. 359)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4168370&memberNo=39582715 



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설악산 적벽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레드페이스
 
그것은 위압감이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100여 미터의 검붉은 벽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 나는 분명 그런 것을 느꼈다. 때는 지난해 8월, 등반 차 설악산을 찾았다. 옛 비선대 산장 건너편의 가파른 사면을 따라 10여 분 오르니 이내 머리 위로 조망이 트이고 적벽에 다다랐다. 가까이서 보니 적벽은 위로 오를수록 경사가 심해지는 오버행이었다. 턱을 높이 치켜들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만 그 자태가 한눈에 담겼다. 그것은 바위(岩)도 봉(峯)도 아니었다. 과연 벽(壁)이라 불릴 위용이었다. 


벽의 중앙부로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 하강을 위해 던진 로프가 허공에 떠 있었다. 로프와 벽 사이의 거리만 보아도 아찔한 각도와 고도가 체감되었다. 그 아래 정적의 붉은 벽 위로 새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두 명의 클라이머가 에코-독주길을 오르고 있었다. 배대원, 차승준씨였다.  

 

적벽(赤壁)이 부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문 기자와 돈독한 사이가 될 거라는 느낌이 딱 들었었죠. (웃음)”
딱 1년 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8월이 되었고, 다시 적벽을 찾았다. 1년 전 적벽에서 처음 만났던 두 클라이머 배대원, 차승준 씨도 함께했다. 적벽에서의 첫 만남 이후로 기자와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었는데, 수년 전부터 코오롱등산학교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대원씨와는 사제지간이 되었으며, 차승준씨와는 등산학교 선후배이자 동문이 되었다. 북한산, 도봉산, 대둔산, 선운산, 판대아이스 파크 등 함께 줄을 묶으며 다진 자일의 정은 금세 두터워졌고, 어느새 우리는 악우(岳友)지간이 되었다. 1년 전 처음 찾은 적벽에서 처음 만났던 인연들과 다시 찾은 적벽. 이번 취재는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 


적벽은 사선크랙과 페이스로 이루어진 평균 경사 100도의 오버행 벽으로, 힘과 유연성, 기술과 경험이 고루 필요한 중급자 이상의 등반실력이 요구되는 고난도 등반지이다. 적벽 등반은 1960년 대 부터 시도되었으나, 당시만 해도 위협적인 오버행은 불가능의 영역과 같았다. 마침내 1978년, 크로니산악회와 에코클럽에 의해 초등된 이후에야 뭇 등반가들의 오름짓으로 붉게 타올랐다. 크로니산악회의 ‘크로니길’과 에코클럽의 ‘에코길’, 인천교대산악부의 ‘교대길’과 이성주씨의 ‘독주길’이 차례로 개척되었고, 2001년에는 전용학씨가 ‘2836’을 개척했다. 


“며칠 전에 대원형이랑 미륵장군봉 타이탄 길에 등반하러 왔었어요. 돌아오는 주말에는 유선대 인천교대길을 등반할 계획이고요. 장마라고 등반을 멈출 순 없죠. 설악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최근 틈만 나면 설악을 찾고 있다는 차승준씨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런저런 반가운 근황을 나누며 소공원에서 와선대를 지나 천불동계곡에 이른다. 비선교를 건너 뒤돌아보니 정면으로 우뚝 솟은 기암이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좌측으로 허리춤에 금강굴을 자랑하고 있는 미륵장군봉이 보이고 그 옆으로 고고하게 솟은 적벽이 눈길을 훔친다. 내리는 비에 짙어진 벽이 유난히 붉은 자태를 뽐낸다.  


“예전 같았으면 비선대 산장에서 여유롭게 비가 그치길 기다렸을 텐데 말이죠.” 
순식간에 빗방울이 굵어지고, 잠시 나무 아래로 몸을 피해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빗나간 예보에 우중 등반을 감행하게 된 취재진이 긴급대책회의를 연다. 배대원 씨가 아쉬운 한숨을 내뱉으며 멀리 적벽을 바라본다. 
“크랙 사이로 물이 너무 흘러요. 오늘 에코-독주 등반은 좀 어렵겠는데요.”

 

 그 벽 위로 비바람 내리칠 때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 재빨리 적벽으로 이동해 등반 준비를 시작한다. 장비를 착용하며 고개를 돌리니 우측으로 수려한 설악의 침봉이 눈에 담긴다. 준비를 마친 배대원씨가 ‘자유2836’ 앞에 선다. 젖은 바위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물바위가 이내 못 미더운 눈치다. 조심스레 등반을 시작한 배대원씨가 사선크랙을 따라 침착하게 첫 피치를 지난다. 평소 같으면 재빨리 올랐을 구간도 수차례 시도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니 쉽지 않음이 느껴진다. 적벽의 붉은 크랙 사이로 빗물이 계속 흐르고, 빌레이를 보는 차승준씨의 두 손에도 긴장감이 스민다. 


“승준아, 올라올 때 물 챙겨와!”
“대원형은 꼭 출발 후에 이런 부탁을 한다니까요! 버릇을 고쳐줘야 겠어요!”
후등으로 차승준씨가 등반을 시작한다. 그녀가 등반을 시작하자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멎는다. 곧이어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하늘이 개고 빛이 든다. 앞서 배대원씨의 등반을 지켜보며 등반 상태를 파악한 차승준씨가 미끄러움에 발이 터지는 걸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1피치를 지난다. 무사히 선등자에게 식수와 행동식 배달 임무를 완수한 차승준씨가 메고 온 배낭을 1피치 종료지점에 데포시킨다. 


‘자유2836’은 본래 ‘2836’이다. 2001년 개척 당시 개척자 전용학씨가 인공등반루트로 올랐다가, 2008년에 자유등반으로 2836을 다시 오르면서 루트명 앞에 ‘자유’를 붙여 ‘자유2836’으로 정정했다. 배대원씨가 자유2836 2피치 바위 턱을 지나다 두 차례 미끄러진다. 결국 한 손으로 퀵드로를 잡은 채 루트파인딩을 한다. 연신 젖은 손을 옷에 닦기 바쁘다. 
뒤이어 2피치 등반을 시작한 차승준씨가 1피치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시원시원한 동작을 보여준다. 2피치 중간부, 차승준씨가 다음 홀드를 향해 몸을 던지다 발이 터지면서 1m가량 추락을 먹는다. 홀드가 불확실한지 자세를 다양하게 바꾸며 시도를 이어간다. 차승준씨가 온 힘을 다해 버티며 무사히 크럭스를 지나 세 번째 퀵드로에서 로프를 뺀다.  
“으악! 텐션!”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진다. 차승준씨의 외침이 빗소리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그녀의 오름짓은 물안개를 가르며 붉은 벽을 타고 오른다.    

 

사제지간에서 최고의 자일파트너로 
“다행히 오버행이라 비를 많이 맞지는 않았어요. 역시 적벽은 적벽이네요.”
등반을 마친 배대원씨와 차승준씨가 허공에 로프를 던진다. 차승준씨가 먼저 하강하고, 뒤이어 배대원씨가 하강한다. 이후 배대원씨가 장비를 정리하고, 차승준씨가 로프를 사린다. 별다른 조율 없이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등반이 마무리된다. 손발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환상의 콤비가 따로 없다.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후 각종 등반을 함께하며 자일의 정을 쌓았고, 서로의 등반스타일과 성향을 맞춰가며 어느새 최고의 자일파트너가 되었다. 


“저는 고산등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지난겨울에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에 올랐어요. 대원형도 같이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에요~” 
차승준씨는 암벽과 빙벽에 이어 올해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드라이툴링을 시작했다. 얼마 전 응시한 등산 강사 자격시험에서는 합격의 쾌거를 이뤘다. 다양한 산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도전 정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양해지고 있다는 차승준씨. 언제부턴가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꿈도 킬리만자로를 시작으로 첫걸음을 뗐다. 


“승준이는 나중에 빅월등반도 배우고 싶다고 해요. 저는 뒤에서 항상 지지하고 응원할 생각입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요즘 크랙등반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동안 다양한 등반을 했지만 째밍이나 고난도 크랙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거든요. 뒤늦게 주변 형누나들을 통해 크랙과 전통등반의 가치에 빠졌습니다.” 


빙벽·드라이툴링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던 배대원씨는 지난 2월,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개최되었던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에서 난이도와 스피드 부문 개인전 1위를 석권했다. 그의 뒤로 현역 선수들이 순위권에 들었으니, 선수생활을 떠난 7년의 시간이 무색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전통등반에 심취할 계획이라는 클라이머 배대원.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도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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