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실수를 하면

한 번 넘어지면

그 다음에 넘어지는게 두렵지 않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얘기죠.


넘어진 장소에 가면

'또 내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죠.

보통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래서 오늘 종섭군을 봤어요.

(중략)


지난 번의 실수를 보란듯이

그게 약이 되어서

오히려 동력으로 땔감으로 떼운 것 처럼

이번에 만회하겠다는 마음으로


조금도 기죽거나 겁먹은 눈빛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정말 놀랍네요.


- 보이프렌드 Let's Get It Started 박진영 심사평 




저도 종섭군이 지난번에 넘어진 것 때문에

오늘 무대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내심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을 정도로

사실 좀 말이 안나오네요.


(중략)


넘어지는 사람이 패배하는 사람이 아니죠

넘어져서 주저 않는 사람이 패배하는 사람이죠.


이 친구들은 일어나서 너무 빨리 뛰어서...

제가 너무 행복합니다.


죄송해요, 좋은 심사평을 하고 싶은데

제 표현 방법으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 보이프렌드 Let's Get It Started 양현석 심사평



<KPOP STAR Season 6; The Last Chance>

SBS

2017 April





제가 임용고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어떤 것보다 노력만이 변수가 되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었어요




(중략)


집에 돌아오자마자 습관처럼 TV를 켭니다.

TV는 왜 틀어놔요?


그냥 공부하기 전 틈틈히

너무 고요하면 혼자 있는 게 느껴져서

화이트노이즈라고 하죠

그냥 틀어놓는 거에요.


안 들어도 약간 소음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중략)


불안함, 안전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게 제일 크죠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메신저도 지우고 혼자 지내죠

친구들은 안 만나요?


갑자기 울 것 같아...

되게 형식적으로 물어보시는 건데도 

들어주시니까 감사해요


- 서울대 졸업생 조은혜(27)



쫓기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지금 쫓기는 거 같아요?

네, 많이 쫓기는 거 같아요.


뭐가 쫓아다녀요?

돈도 쫓아오고 졸업도 쫓아오고

취업도 쫓아오고 다 쫓아오는 것 같아요.

지하철 타면 숨이 탁 막히면서

나도 빨리 움직여야 하나 싶고


사는 공간도 좁은 데서 살 수밖에 없고 땅값이 비싸니까


- 이화여대 김은현(26)


[KBS스페셜 12회] 지옥고, 청년의 방

KBS 1TV

2016.04.16



source : http://www.kbs.co.kr/1tv/sisa/k_special/view/vod/index,1,1_list003,6.html?searchStatus=0&articleIndex=8&vosample=&currentUrl=http://www.kbs.co.kr/1tv/sisa/k_special/view/vod/index,1,1_list003,6.html



■ 본문 중에서


# 나 - 11p.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열네 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위경련과 함께 찾아와 일상을 정지시킨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 흰 도시 - 29-31p.


1945년 봄 미군의 항공기가 촬영한 이 도시의 영상을 보았다. 도시 동쪽에 지어진 기념관 이층의 영사실에서였다. 1944년 10월부터 육 개월여 동안, 이 도시의 95퍼센트가 파괴되었다고 그 필름의 자막은 말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던 이 도시를, 1944년 9월 한 달 동안 극적으로 독일군을 몰아냈고 시민 자치가 이뤄졌던 이 도시를, 히틀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깨끗이, 본보기로서 쓸어버리라고 명령했다. (중략)


그러므로 이 도시에는 칠십 년 이상 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시가의 성곽들과 화려한 궁전, 시 외곽에 있는 왕들의 호숫가 여름 별장은 모두 가짜다. 사진과 그림과 지도에 의지해 끈질기게 복원한 새것이다. 간혹 어떤 기둥이나 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았을 경우에는, 그 옆과 위로 새 기둥과 새 벽이 연결되어 있다. 오래된 아랫부분과 새것인 윗부분을 분할하는 경계, 파괴를 증언하는 선들이 도드라지게 노출되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은 그날이었다.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 그래서 아직 새것인 사람. 어떤 기둥, 어떤 늙은 석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아, 그 위에 덧쌓은 선명한 새것과 연결된 이상한 무늬를 가지게 된 사람.



# 눈송이들 - 54-55p.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 백열전구 - 95p.


고요하다.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창밖으로, 자정 넘어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보인다.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방금 울었거나 곧 울게 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부서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영원을 우리가 가질 수 없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되었던 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 넋 - 110p.


부서져 본 적 없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여기까지 걸어왔다. 꿰매지 않은 자리마다 깨끗한 장막을 덧대 가렸다. 결별과 애도는 생략했다. 부서지지 않았다고 믿으면 더이상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몇 가지 일이 그녀에게 남아 있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 - 자신의 것을 포함해 - 초를 밝힐 것.



<흰, The Elegy of Whiteness>

한강 소설

난다, 2016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난다 2016.05.25
상세보기





2권_ 얼음과 열 - 17p.


미즈노 : 마루야마... 나... 심각해? 솔직히 말해봐

마루야마 : 너... 넌...

미즈노 : 조난자 같아... 나 ...

           시, 실은 겁이 나서... 너한테 말해야 하는데, 날 두고... 얼른 내려가라고.

마루야마 : 있을게.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걱정 마. 응?

미즈노 : 내... 일... 출근... 못하겠다.





5권_ 구조사 - 195~197p.


그 산에 오르기 전날 밤,

난 스파게티를 위가 아플 정도로 먹었어.

그 일을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산에 올라가기 전에 스파게티를 배가 터지도록 먹어두기 잘했다.

오로지 그 생각만 했어.

조난자를 업을 수 있는 힘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라고...


" 먹을 거에요. 

  내일 구조를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먹을 거예요. "




7권_ 마음의 산 - 209~213p.


나오타 : 산은... 우리 아빠가 죽고... 다른 사람들도 다치는 곳인데...

           형은... 왜 계속 산에 있어?

산포 : 나는... 산이 좋으니까.

나오타 : 왜? 왜 좋아?

산포 : 슬픈 사고가 생기는 건 산의 절반. 즐거운 일이 있는 것도 산의 절반.

        양쪽이 다 있는 게 산이야.

        거기서 구조 일을 시작했을 때야...

        미국에 그랜드티턴이라는 산이 있는데,

        (중략)

        그날 시신이 된 세 사람과,

        구조대를 맞이한 제니 레이크라는 호수는,

        말할 수 없이 잔잔하고 맑았어...

        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산 山>

신이치 이시즈카(ISHIZUKA Shinichi) 지음,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2006



산 1~17 세트
국내도서
저자 : 신이치 이시즈카(ISHIZUKA Shinichi) / 설은미역
출판 : 학산문화사(만화/잡지) 2006.02.15
상세보기


원문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1/2014103103307.html


“나의 일상은 하루 3시간쯤 일하고 나머지는 노는 것이다. 바닷가 갯벌의 마을을 어슬렁거리면서 고깃배들을 보고, 어로 작업의 동작을 보고, 밀물과 썰물을 보고 어민들의 표정이나 농부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이 나의 놀이이자 일이다. 요즘 가을 햇볕에 가오리가 빨랫줄 위에 널려 연처럼 말라가는 꼴을 보면, 그 뼈대 안에 아주 먼 옛날, 수억만년 전의 새의 느낌이 살아있다. 그런 느낌들은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삶의 직접적인 현장에서 체득한 느낌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나는 내 글이나 말로 여론 형성에 기여하려는 목표가 없다. 나의 논리 앞에 남을 대령시키려는 의도가 없다. 말을 가지고 남과 정의를 다투려는 의도가 없다. 나는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내면을 드러내서 그것이 남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으면 소통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남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와 남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크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의 가치가 무엇이냐. 

이것은 참 어려운 건데. 

누구나 다 다른 가치가 있겠지만, 

나는 남한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사람들이 히어링 기능이 거의 없다. 

토킹만 있고 채팅만 있고 듣기가 안되는 세상이다. 

듣는 사람은 없이 떠드는 사람만 있다. 

사방에서 떠드는데 아무도 안 듣는다. 

담벼락에 떠드는 듯한 소음이 가득차 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타락한 모습이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친절하고. 

얼마 전에, 책 읽은 얘기 또 하면 안되는데, 

니체를 읽었더니 이런 얘기가 있더라. 


‘정의로운 사람은 빠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자는 스스로 서둘러 판단하는 것을 삼간다. 

 정의로운 자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이고, 정의로운 자는 남에게 친절한 자다.’ 


참 평범한 문장인데 원숙한 철학자의 통찰이 보였다. 

우리는 정의로운 자가 친절한 자라고는 상상을 못하지 않나.

흔히 정의로운 자는 강력하고 우뚝하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남을 복종시키고 

정의의 목표를 향해 인류를 끌고 가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데, 

정의로운 자는 너무나 빨리 다가오는 판단을 스스로 삼가는 자라고 니체는 썼다. 


그것을 읽고 많이 반성했다. 

정의라는 것은 남에게 친절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김훈 강연

조선비즈, 2014



# 작가의 말_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건 동물의 본능이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의 오래된 특권입니다


<엘리펀트맨>은 실제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심각한 기형을 가졌떤 존 메릭의 일화를 다룹니다. (중략) 사교장의 셀러브리티가 된 이후에도 존 메릭은 여전히 '서커스의 괴물'로 기능합니다. 일종의 구경거리죠. 거리를 내달리며 "나는 사람이다"라고 비명을 지르던 존 메릭은 결국 자기 방에서 자살합니다.


TV를 틀고 라디오를 켜고 책을 읽으면 지금 당장 박차고 일어나 무슨 짓이든 해서 성공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성공하지 않는 삶은 뒤처지는 삶이고 뒤처지는 삶은 불행한 삶이니 지금 당장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하라고 외칩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은 노력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말합니다. 그 희박한 일말의 가능성은 너희도 언제든지 TV 속의 저 화려한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고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합니다.




#3_ 연애든 섹스든 결국 신라면 같은 겁니다 - 33∼34p.


그러니까 연애든 섹스든 결국 신라면 같은 겁니다. 신라면 맛이 변한 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어찌됐든, 요는 사람에게 한결같은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지점에 있어서 남자든 여자든 어느 쪽도 한때의 약속을 빌미로 규탄받을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갑수씨가 자리를 뜨며 마지막으로 물어왔다. 오늘은 왜 통 말이 없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갑수씨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멀어져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갑수씨는 아까부터 내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를 울리고 싶지는 않아. 갑수씨는 택시를 탔고 나는 오징어짬뽕을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4_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이?" - 36∼38p.


누워 있다가 벽에 뺨이 닿았다. 잠이 오지 않아 길고 긴 밤. 벽은 벽인데 오늘따라 벽 같지 않다. 만져보았다. 쓰다듬었다. 수천 번의 낮과 밤이 습기마냥 서려 있다. 눅눅하진 않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이 방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떠올렸고 사건들을 환기했다. 처음 이 방에 발을 들여놓았던 날이 생각났다. 하루종일 업무를 보고 들어와 날이 밝도록 혼자 글을 끄적거리던 날이 생각났다. 천장에 물이 스며들어와 유리테이프를 붙여가며 밤새 골치를 썩었던 날이 생각났다. 하늘 아래 제일 밑바닥에 자리잡은 생각들만 집어들어 머리를 흔들고 때리던 날이 생각났다. 장마 내내 옷장 가득 곰팡이가 피어올라 신세를 저주했던 날이 생각났다.

욕심냈던 날들. 지루했던 날들. 가슴에 칼이 돋아 났던 날들.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날들. 끝내고 싶지 않았던 날들. 아 저 빨간 밥통은. 아 저 문지방 위의 철봉은. 아 저 벽걸이 에어컨은. 아 그리고, 사람이. 소소한 기억들은 살갑고 강인하다. 이 안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새삼. 많이 웃었고 엉엉 울었고 발을 굴렀고 불안해 뒤틀렸고 행복해 뻐근했다. 더불어 어리석었다.

내일 아침 이 방을 떠난다. 다른 반지하방으로 간다. 내 삶의 가장 강렬한 순간들을 함께했던 공간과의 마지막 밤이다. 가슴이 저리고 시원하다. 나는 내일 갈 거야. 너보다 잘나지도 않았어. 그냥 반지하방이야. 그래도 나는 갈 거야. 덜 어리석겠다. 혹시 약이 오를까. 사람 같다.



#인터미션 #3_ INTERMISSION - 124∼125p.


다시 잠에서 깼다. 조용한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반지하에 볕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다행히 날씨는 좋다. 바람도 적당하다. 새삼스레 세상이 참 맑네. 간밤에 꿈을 꾸었다. 마음이 여전히 아픈 걸 보니 와 정말 대단했어. 무언가 애틋하고 아련한 게. 그럼 꿈속에서 꿈이라고 생각했던 건 모두 현실인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위배되지 않는 것일 테지요. 위배요? 위배죠. 그것은 무엇에 대한 위배입니까. 그것은 진심과 오해의 쌍곡선 법칙에 대한 위배입니다. 그게 뭔 개수작이지요. 진심이면 진심일수록 곧이곧대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럼 다시 자볼까. 꿈꾸면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한번 더 보면 이번에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 눈을 감았따, 뜨며 나는 조금 괴롭다. 쪽지를 잃어버리지 말자. 쪽지를 일어버리지 말아야겠어. 쪽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쪽지는 영영 사라졌다.



#16_ 결혼을 했다. 고맙습니다. 이혼을 했다. 미안합니다. - 127∼129p.


결혼을 했다. 고맙습니다. 이혼을 했다. 미안합니다. 수년 동안 머물렀던 곳을 떠나 지금 이 동네로 이사 왔다. 하루는 뱃속에 서러움이 너무 많이 차올랐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무작정 뛰었다. 미친 듯이 뛰었다. <엘리펀트맨>의 존 메릭 같아 보였을까. 실존인물이었던 존 메릭은 선천적인 얼굴 기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코끼리 인간이라고 불렀다. 영화 속에서 존 메릭은 수많은 인파에게 구경거리로 쫓기면서 "나는 사람입니다!" 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와 달리 내 뒤를 쫓은 건 호기심 많고 잔인한 군중이 아니라 구름같이 많은 수의 나, 였다. 구름같이 많은 약속들. 우리 세대에 본이 되는 부부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했다. 결국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이었다. 형편없다. 

(중략) 갑수씨는 내가 만나본 모든 치들 가운데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모순되고 일그러진 세상의 풍경 앞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것만큼이나, 윤리를 내세워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았다. 거기에 합당한 맥락이 있으리라 여기며 어떻게든 설명 가능한 것으로 이해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는 더러운 것을 더럽다고 말할 줄 알았다. 더불어 더러운 것을 더럽다고 피하거나 못 본 척하지는 않았다. 그 더러움 안에 뛰어들어 함께 몸을 더럽히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유연함이 아니라 되레 강직함이었따. 때로는 위악처럼 보일 정도로 과감한 것이었다.


#인터미션 #4_ INTERMISSION - 148∼158p.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대해 한 치의 의혹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묘한 취미가 있따. 연예인의 가십을 논하는 카페 테이블에서도, 누구네 엄마를 탓하는 반상회 뒷담화에서도, 하물며 틀어진 관계를 두고 서로를 탓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듬성듬성한 사실 사이의 공백들을 참지 못한다. 명쾌하지 않다면 거기 무언가 더 있을 거라 단정한다. 결국 그 빈틈들을 이야기로 채워넣는다. 타인의 사연은 그렇게 아침드라마가 되고 어느 순간 진실보다 더 설득력 있는 사실로 굳어진다.


(중략)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자.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대해 한 치의 의혹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묘한 취미가 있다. 그래서 관계의 비극에 관해 괴상한 음모론과 설명을 끼워맞추고 상대를 욕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파생된 상상일 뿐이다. 삶이란 '한 치의 의혹 없이 존재하거나 투명하게 설명될 수 없는 거대하고 허무맹랑한 서사'다. 그(녀)가 당신을 포기한 이유를 자기 자존감의 보존을 위해 굳이 설명하려다보면 위악과 거짓과 파괴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결코 설명 가능한 영역이 아니며 괜히 설명을 하려 드는 순간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잔인한 진실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사랑을 청산하게 된다. 그러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잔인하고 비겁한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살다보면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야 만다. 이 글을 쓴 나나 그것을 읽은 독자들이 그러한 관계의 어찌하려야 어찌할 수 없는 위계를 깨닫고 나아가 더 나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런 건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고야 마는 것이다. 관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결국 이 모든 과정을 붕어처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이며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것의 실체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소설

아우름(문학동네), 2014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국내도서
저자 : 허지웅
출판 : 아우름(문학동네) 2014.03.05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 창의성과 지능 - 45 ~ 47p.


누구나 '지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략은 알고 있다. 추론에 능하고 주변 세상의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말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이해가 빠른 부류로, 동기부여만 된다면 학교나 일터에서 성공을 이뤄낸다. 반면 '창의성'은 좀 더 유동적인 용어다. 유명한 동기부여가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티브 잡스, 셰익스피어, 헨리포드, 피카소, 오프라 윈프리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창의성의 예로 꼽힌다. '창의성'은 곧 '성공'과 동일시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많은 위대한 성공담들을 보면 창의성이 어떤 것이라고 쉽게 단정내릴 수 없게 된다.


'구글'이라는 아이디어는 꿈에서 나왔다. 래리 페이지는 어느 날 문득 꿈을 꾸다가 생각했다. '웹 전체를 다운로드 받아서 링크들만 보유할 수 있다면... ... ?' 잠에서 깨자마자 그는 바로 펜을 집어 쓰기 시작했다. 페이지와, 세상을 바꿔놓을 회사를 세우지 못한 모든 박사학위 소유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운 좋게 꿈을 꿨다는 것?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걸까? (중략)


창의성은 다음과 같은 과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무언가 새롭거나 예외적인 산물이다.

1) 난점과 문제점, 정보의 간극과 결함과 치우침 등을 감지해서,

2) 이런 결함들을 근거로 추측하고 가설을 세워서,

3) 이런 추측과 가설을 평가하고 시험해서,

4) 되도록 어떻게든 그것을 교정하고 재검해서,

5) 궁극적으로 그렇게 나온 결과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 면접에서 망하지 않는 법 - 194 ~ 196p.


  • 질문을 바꿔 말해본다_ 질문을 당신만의 단어로 다시 말해보라. 세부사항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때로 정확히 복기하며 표현해나가다 보면 교묘한 속임수의 정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 의미를 명확히 해본다_ 질문이 뭐든 의미를 분명히 해달라거나 더 상세하게 말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 대번에 알 수 있는 답이 왜 틀린 것인지를 설명한다_ 이런 질문은 어렵다. '어렵다'는 말은 대개, 금방 떠오르는 첫 번째 답은 정답이 아니라는 의미다.
  • 유추로 설명한다_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 즉 멘탈매핑(mental mapping)은 모든 종류의 창의적 사고로 가는 열쇠다. 비슷한 뭔가, 혹은 다른 뭔가와 어떤 식으로 비교될 수 있을지 설명하라.
  • 브레인스토밍을 한다_ 가능한 많은 접근방법을 열거해보라. 모든 방법이 좋은 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불완전한 아이디어라도 많이 내놓는 게 낫다.
  • 비판한다_ 브레인스토밍으로 나온 아이디어들의 문제점을 분석해야 한다. 어떤 접근방법이 가장 유망한지 말함으로써 일종의 마무리를 짓는 게 이상적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닭을 묘사하시오 - 262~263p.

class Chicken {
public:
bool isfemale, isfriendly, isfryer, isconceptualart, isdead;
};
int main( ) {
Chicken Blinky;
Blinky.isfemail = true;
Blinky.isfriendly = true;
Blinky.isfryere = true;
Blinky.isconceptualart = true;
Blinky.isdead = true;
}

데이터베이스가 뭔지, 세 문장으로 여덟 살 된 조카에게 설명하시오 (확산적 사고 테스트) - 292 ~ 293p.


"데이터베이스는 정보의 아이팟 같은 거야. 아이팟에서는 수천 개의 노래를 저장해도 원하는 곡을 뭐든 빨리 찾을 수 있잖아. 데이터베이스도 똑같은 일을 해. 사람들이 컴퓨터나 인터넷에 저장했던 정보를 가지고 말이야."



<당신은 구글에서 일할 만큼 똑똑한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유지연 옮김

타임비즈, 2012


당신은 구글에서 일할 만큼 똑똑한가?
국내도서
저자 : 윌리엄 파운드스톤 / 유지연역
출판 : 타임비즈 2012.04.19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 핀란드 계획 - 025 ~ 026p.


구글이 성공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2003년 그날 우리가 이사회에 제출한 계획서가 대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는 재정 계획이나 수익원 창출에 대한 방안이 담겨 있지 않았다. 사용자나 광고주, 협력업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이들이 세분화된 시장에서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시장조사도 없었다.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어떤 광고주를 우선 목표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구글 광고제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논의나 유통 경로 전략도 없었다. 영업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제품관리부에서는 무엇을 하며 또 기술개발부에서는 무엇을 한다는 조직 기구표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무엇을 언제 개발한다는 상세한 제품 로드맵이 없었다. 예산도 없었다. 또 이사회와 회사 지도부에서 진행과정을 검사할 수 있는 목표와 이정표가 없었다.

또 어떻게 회사를 세울 것인지에 대한 전수로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래리와 세르게이가 말하는 "기술진에게 가서 말해보라"라는 정신에 충실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기반의 기업을 건립하고 수십억 인류의 삶을 바꿔놓는다는 드높은 야망을 어떻게 달성한 것인지에 대한 전술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시에는 전술이 서지 않았다는 간단한 이치로 그냥 그대로 두었다. 경영 전술에 관해 우리가 그 당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 두 사람이 20세기에 배운 것들은 틀린 게 많다는 것과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는 것뿐이었다.



# 전문성과 창의력 - 035 ~ 038p.


이들의 실천은 특수한 임무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회사의 정보에 접근하는 데 제한을 받지 않으며 모든 연산 시스템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은 리스크를 떠많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리스크를 무릅쓰는 노력이 실패할 때 불이익을 받거나 책임 추궁을 당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역할 규정이나 조직의 구조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사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시도하도록 권장받는다. 그리고 어떤 결정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말없이 가만있지 않는다. 지루함을 느끼면 쉽게 분야를 바꾸기도 한다.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기술적 깊이와 사업감각, 창의적인 안목이 결합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들은 적어도 전통적 의미에서의 지식 노동자라고 할 수 없다. 일종의 신종 동물로서 우리가 "전문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smart creative)"이라고 명명한 이들은 인터넷 시대에 성공을 이끌어가는 핵심적 존재들이다. (중략)


전문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란, 깊은 기술 지식과 풍부한 직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이다. 우리 업종에서는 이들이 컴퓨터과학자일 가능성이 높고 적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화면의 마술에 숨겨진 시스템의 생각과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업종에서는 의사나 디자이너, 과학자, 영화제작자, 엔지니어, 요리사, 수학자일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전문가다. 단순히 개념적인 설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견본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스마트하게 분석한다. 데이터를 좋아하며, 결론을 내리기 위해 데이터를 쓸 줄 안다. 이들은 또 데이터의 오류를 이해하며 끝없는 데이터 분석을 경계한다. 데이터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것을 데이터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중략) 


이들은 창의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현상 유지에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어디서나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보고 그것을 해결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거만할 수도 있다.

이들은 창의적인 리스크를 마다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로부터 언제나 뭔가 귀중한 것을 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실패하는 그 순간에도 확신을 버리지 않으며 실패한 뒤에도 다시 벌떡 일어나 제기할 기회를 노린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창의력을 드러낸다. 무엇을 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며 지시를 받아도 동의하지 않을 때는 그 지시를 무시하기도 한다. 또 주도적으로 행동에 나설 때가 많다. (중략)

이들은 완벽하리만치 창의적이다. 언제나 세부적인 것을 놓치지 않고 줄줄 외고 있지만 공부하고 기억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부적인 내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창의적으로 소통한다. 재미가 넘치고 날카로운 감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일대일이든 일대 다수든 카리스마를 풍긴다.



# 베조스의 피자 두 판 규칙 - 077 ~ 078 p.


조직은 작은 팀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전에 "피자 두 판 팀"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부서의 규모는 피자 두 판이면 모두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작아야 한다는 말이다. 규모가 작은 팀은 큰 팀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정치운동이나 누가 공로를 인정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덜 쓴다. 작은 팀은 가족과 같아서 말다툼을 벌이거나 싸울 수도 있고 제 기능을 전혀 못 하게 될 수도 있지만 보통 위기가 닥칠 때는 뭉친다. 작은 팀은 제품 생산이 늘어날 때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조직이 자체의 기능을 유지하다 보면 마침내 훨씬 더 큰 팀이 되게 된다. 규모가 커지더라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작은 팀의 존재를 방해하지 않는 한 문제 될 것은 없다. 규모를 조정하는 회사에서는 둘 다 필요하다.



# 경쟁에 치중하지 마라 - 140 ~ 141p.


"우리가 어느 정도 경쟁을 의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주로 직원들에게 경쟁을 의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느낀다. 내 생각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존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진정 필요하지만 아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경쟁자가 그것을 안다면 당연히 그들은 그것을 우리에게나 다른 누구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대는 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적의 성공은 그대의 성공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라. 단, 따라가지는 마라.



# 열정이 있는 사람은 말이 필요 없다 - 154p.


열정적인 사람은 그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을 뿐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들은 열정을 생활 속에 간직하고 있다. 열정이란 이력서에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 특징은 - 지속성, 근성, 진정성, 끊임없이 전념하는 태도 - 점검목록으로 측정할 수 없다. 언제나 성공과 동의어가 된다고도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무언간에 진정 열정이 있다면 처음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그 일에 매달리는 법이다. 실패는 종종 더 큰 열정을 부르기도 한다.



# 가르쳐 줄 수 없는 통찰력 - 163 ~ 164p.


LAX나 구글다움(Googleyness), 또는 새벽 3시의 SNL 등 어떻게 부르든,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여러분과 함께 재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반드시 여러분이 좋아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LAX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상대가 여러분과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상상해보라. 또 여러분이 어떤 정치색을 갖고 있든 그와 정반대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라. 하지만 상대가 지적 능력이나 창의성 면에서 여러분과 비슷한 사람이라면 - 우리가 구글다움이라고 부르는 자질 - 두 사람은 서로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회사는 같은 팀에 두 사람이 있기 때문에 더 발전할 것이다.



# 평가소견 - 183 ~ 184p.


구글에서 지원자에 대한 평가를 직무와 조화를 이루는 서로 다른 3대 영역으로 쪼갠다.

1) 리더십 : 우리는 어떤 직원이 다양한 상황에서 팀의 능력을 총동원하기 위해 서로 다른 특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고자 한다. 여기에는 직무나 조직에서 리더십 역할을 보여주는 것과 공식적 지도자가 아니라고 해도 팀이 성공하도록 돕는 능력이 포함된다.

2) 업무관련 지식 : 우리는 단순히 자기 혼자만의 기술을 보유한 게 아니라 다양한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또 지원자가 해당 업무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험과 배경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특히 공학팀 지원자의 경우, 우리는 전문지식의 코딩 스킬(암호화 작업 기술)과 기술 영역을 조사한다.

3) 일반적 인지능력 : 우리는 성적증명서의 점수나 등급보다는 지원자가 어떤 사고를 하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우리는 지원자에게 직무와 관련된 질문을 몇 가지 하면서 문제해결 방법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확인하기를 좋아한다.

4) 구글다움 : 우리는 지원자가 독특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또 지원자가 이런 특징을 지향하는지 확인하려고 하며 이런 특징과 관련된 구체화 능력과 행동편향, 협동적 기질을 찾으려고 한다. 


구글이 채용하는 경우와 채용하지 않는 경우 - 200p.


여러분보다 유능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을 채용하라.

여러분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거나 도전하지 않을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제품과 문화의 가치를 높일 사람은 채용하라.

이 두가지 가치에 기여하지 못할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일을 해낼 사람을 채용하라.

문제점만 생각하는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집중적으로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 열정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라.

단순히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동료들에게 영감을 주며 일할 사람을 채용하라.

혼자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여러분의 팀이나 회사와 더불어 성장할 사람을 채용하라.

기술이나 관심사가 편협한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성격이 원만하면서도 독특한 관심과 재능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라.

오로지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윤리적이고 개방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을 채용하라.

정치적이거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채용하지 마라.


뛰어난 지원자를 발견할 때만 채용하라.

기준 이하의 것에 만족하지 마라.

경력 F-16을 선택하라. - 201 ~ 207p.


서핑을 하듯이 경력을 쌓아라


조너선이 경영대학원에 다니면서 제품관리에 관심을 쏟을 때, 그는 장래의 고용주들이 연 프레젠테이션에 몇 차례 참석했다. 그 중 하나는 샴푸나 가정용 세제 같은 소비재 상품에서 선두를 달리는 회사에서 연 것이었다. 그들은 회사의 제품관리를, 소비자 표본 집단과 제품 성과에서 모은 정확한 데이터에 토대를 둔 과학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마치 백미러를 보면서 차를 앞으로 모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그 다음 조너선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하이테크 회사에서 여는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했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의 제품관리는 "바위투성이의 지상 2미터 위에서 마하 2의 속도로 F-16 전투기를 모는 것 같지만, 단 부딪칠 때는 전자오락실의 비디오게임과 같아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고 했다. 멋진 생각이다! 최고의 기업은 여러분이 F-16을 모는 곳이다. 부딪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재도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사업을 할 때는, 특히 하이테크 산업이라면 여러분이 하는 일만으로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기에 충분치 않다. 여러분은 적어도 현실의 큰 파도를 보고 있다가 그 파도를 타고 해안까지 가야한다. 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은 먼저 회사를 보고 다음에 직책을 보며 그런 다음에야 업종을 본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올바른 업종이 우선이다. 그 까닭은, 여러분이 직업 활동을 하는 중에 회사를 바꿀 기회는 몇 차례 다가오며 그때 가서 업종을 바꾸는 것은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업종은 여러분이 서핑을 할 장소로 생각해야 하고 회사는 여러분이 타야 할 파도로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은 언제나 최고 최대의 파도가 있는 곳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기술을 쌓는 사람의 말에 늘 귀를 기울여라


업종을 선택한 다음에는 회사를 고를 차례다. 그 다음에는 진정으로 기술을 쌓아가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이들은 어디서 기술이 통하는지, 기술이 어떻게 기업을 바꿀 것인지 우리보다 먼저 아는 천재 수준의 전문성과 창의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칩과 컴퓨터의 가격이 싸질 것이며 소프트웨어가 컴퓨터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열쇠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것이다. 채드 헐리(Chad Hurley)는 값싼 비디오카메라와 대역폭, 기억장치가 비디오 오락 산업의 생산, 소비 형태를 변화시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유튜브를 공동 설립한 것이다. 리드 호프먼은 인터넷의 연결능력이 전문직에게도 활성화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링크드인을 창업했다.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강력한 소프트웨어가 클라우드에서 활용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원칙을 토대로 세일즈포스닷컴을 세우고 닷컴 기업이 붕괴되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가 소비자의 장신구처럼 될 것이고 기술력과 시장이 그를 따라잡는 데는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어떤 사람이 기술을 취득하ㅈ는지 어떻게 아는가? 그들이 걸어온 과정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은 그 기술로 경력을 쌓는다는 생각을 하기 훨씬 전부터 기술과 사업가 정신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리드 호프먼이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처음 한 일은 게임 개발업자에게 제품 개선 제안을 하기 위해 컴퓨터게임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보여준 것이었다. 호프먼은 일자리를 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나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마크 베니오프는 열다섯 살 때 자신의 첫 컴퓨터 프로그램을 팔았고 아타리 800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를 차렸다. 래리 페이지는 레고 인쇄기를 제작했다.

이상의 예는 유명한 것들이지만 그 밖에도 이들처럼 유명하지는 않아도 놀라운 통찰력으로 넘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이야말로 최적의 장소에서 최고의 파도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찾아내서 갈고리로 잡아당기고 꼭 붙잡아라.



활동경력을 계획하라


여러분이 이상적인 직업을 생각하되 현재가 아니라 5년 후의 관점에서 보라. 여러분은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얼마나 성과를 올리고 싶은가? 직업의 내용을 적어보라. 그 직업이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게시물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이제 4~5년 후의 미래로 가서 여러분이 그 일을 하고 있따고 가정해보라. 지난 5년간 여러분이 해온 일은 이력서에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그때까지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길을 밟아왔는가?

계속 그 이상적인 직업을 생각하면서 그 분야에서 일할 때 여러분의 힘과 약점을 평가해보라. 그곳에 이르기 위해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단계에는 외부 입력이 필요하다. 즉, 여러분의 관리자나 동료에게 말을 하고 그들의 의견을 알아보라. 끝으로 어떻게 그곳에 이를 것인가? 그러기 위해 어떤 훈련이 필요한가?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가?

요기 베라(Yogi Berra) - "방향을 모를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곳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통계라는 새로운 플라스틱


통계는 매력적이다. 통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가장 매혹적인 직업은 그 안에 통계가 있다. 단순히 괴짜의 환상적인 세계와는 다르다. 할 배리언은, 상호보완적인 기술의 가격이 싸지고 있고 그것을 압축하는 컴퓨터 기능과 더불어 데이터의 값이 똑 떨어지는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건 언제나 좋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빅데이터(Big Data)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빅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계학자가 필요하다. 데이터의 민주화는 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칼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이 사무라이다. 그러므로 칼날을 날카롭게 길고 "우루와시(uruwashii)[각주:1]가 되어 통계를 잡아라.



많이 읽어라


웹 세상은 문서로 만들어진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으며 허튼소리가 많기는 하지만 쓸 만한 정보도 아주 많다. 각종 사이트와 여러부닝 존경하는 저자를 찾아다니며 이 다양한 도구를 여러분의 뜻에 맞게 활용하려면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내라. 여러분의 생각과 같은 전문적인 사람들과 동아리를 만들고 책과 글을 교환하라.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사업에 관심을 쏟는 것만큼 배우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사업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읽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CEO다. 그러므로 CEO처럼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여러분의 두뇌는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1초마다 새로운 사실 일곱 가지를 배울 수 있는 수용능력이 있다.



여러분의 엘리베이터 피치를 알아두라


여러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그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 통찰력이 있는지, 여러분의 성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특히 고객의 이익을 기준으로) 나아가 그것을 어떻게 큰 그림으로 그려낼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것을 알고 훈련을 하다 보면 확신을 갖고 계획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직자들도 엘리베이터 피치를 알아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객과 회사에 이익을 주는 일로써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앞으로 하게 될 일의 영향력을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두드러지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 중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국외로 나가라


인간의 본성이 지역적인 속성을 띤다면 사업은 규모나 분야에 상관없이 영원하고 세계적인 특징을 띤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있꼬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치 않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곳을 빠져나오라. 그리고 어느 곳이든 다른 데로 가서 살면서 일하라. 현재 대기업에서 근무한다면 국제적인 임무를 찾아보라. 여러분의 관리자는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여러분은 더 가치 있는 직원이 될 것이다.

국외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여행을 하라.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여러분의 고객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마라. 여러분이 소매업을 한다면 점푸 몇 군데를 직접 살펴보라. 미디어 분야에서 일한다면 신문을 펼쳐보든가 라디오를 켜보라. 외국으로 출장 갔다가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도중에 택시 운전사와 나눈 대화만으로도 특유의 통찰을 얻은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 운전사분들이 국제적 기업 전략을 짜는 막강한 힘을 갖춘 능력 있는 분들이라면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열정과 공로를 결합하라


여러분의 열정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간단치 않다. 아마 여러분의 열정과 상관없이 직장을 구한 것에 기뻐하며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경력을 쌓을수록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일이 그 전에 기대하던 우주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분은 어쩌면 열정과 공로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정한 때가 되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할 수도 있다.

"여보, 아니, 말이지, 나 직장 그만두고 몬태나의 목장을 하나 샀어... ... 여보?"

아니면 더 신중한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걸어온 길에 맞춰라. "5년 후에 하게 될 이상적인 직업"을 여러분의 "꿈에도 그리던 직업"에 더 가까이 맞추는 것이다. 단, 현재 걷고 있는 길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올바른 목표를 세우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사람들의 경력이 바뀌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 이메일의 지혜 - 273 ~ 276p.


1) 첫째, 신속하게 답신을 보내라.

2) 둘째, 이메일을 작성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피하라. 발송하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떤 문제점을 묘사할 때는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3) 셋째, 지속적으로 편지함을 비워라. 메시지를 읽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면 즉시 행동으로 옮겨라. 그러지 않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한다면 100퍼센트 시간낭비다.

4) 넷째, 이메일은 리포(LIFO, Last In First Out)[각주:2] 순서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오래된 것은 때로 다른 누군가가 처리하기도 한다.

5) 다섯째, 여러분이 라우터라는 것을 기억하라. 필요한 정보가 담긴 메시지를 받으면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유용할지 생각해보라. 

6) 여섯째, 숨은참조(bcc, blind copy)[각주:3]를 활용할 때는 스스로 이유를 물어봐야 한다. 이유는 언제나 대부분 뭔가를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지만 이것은 투명한 문화에서는 비생산적인 것이고 잘못일 가능성이 있따.

7) 일곱째, 요란하게 불만을 표하지 마라. 그럴 필요가 있을 때는 직접 하라

8) 여덟째, 요구사항을 간단히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확인이 필요한 조치사항을 누군가에게 메시지로 보낼 때는 자신의 주소로도 보낸 다음 '확인'이라는 표시를 하라. 그러면 처리되지 않은 내용을 쉽게 찾아내어 확인할 수 있따.

9) 아홉째, 훗날 검색할 것에 대비하라. 훗날 다시 필요할지도 모를 메시지를 받는다면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자신의 주소로 다시 보내라.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

에릭 슈미트, 조너선 로젠버그, 앨런 이글 지음 / 박병화 옮김

김영사, 2014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
국내도서
저자 : 에릭 슈미트(Eric Schmidt),조너선 로젠버그(Jonathan Rosenberg),앨런 이글(Alan Eagle) / 박병화역
출판 : 김영사 2014.10.17
상세보기


  1. 교양을 갖춘 무사, Cultured warrior [본문으로]
  2. 후입선출, 나중에 들어간 데이터가 위에 있는 구조 [본문으로]
  3. 수신인에게 알리지 않고 제삼자에게 전송되는 전자 이메일 [본문으로]



스카데이 : 바람이 얼마나 찬데 창문을 다 열어놓고-.


라라       : ... 왠지 바람에... 봄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

              창밖만 바라보고 있자니 -

              겨울이 길기도 한데-.

              오늘은- 바람 속에서 봄이 보이는 듯하여-.



봄은 늘 소리없이 오는 줄만 알았었다.

가끔은 이렇게 두근대는 소리를 내며 오기도 하는 것을...


봄은 꼭 바람 속으로 날아오는 줄만 알았었지...

때로는 가슴에 살포시 내려오기도... 하는 것을 ...


<프린세스 61화>



님이여...

...들으셨나요...


평생에 단 한번 울고 가는

라라...라는 작은 새의

마지막 이야기를...


혹시

기억해주실 건가요


사랑한단...

...그 한 마디를...


<프린세스 63화>

한승원



프린세스 Princess 1
국내도서
저자 : 한승원
출판 : 대원씨아이(만화/잡지) 1996.04.11
상세보기





Ms. Streep’s speech:


Please sit down. Thank you. I love you all. You’ll have to forgive me. I’ve lost my voice in screaming and lamentation this weekend. And I have lost my mind sometime earlier this year, so I have to read.


Thank you, Hollywood Foreign Press. Just to pick up on what Hugh Laurie said: You and all of us in this room really belong to the most vilified segments in American society right now. Think about it: Hollywood, foreigners and the press.


But who are we, and what is Hollywood anyway? It’s just a bunch of people from other places. I was born and raised and educated in the public schools of New Jersey. Viola was born in a sharecropper’s cabin in South Carolina, came up in Central Falls, Rhode Island; Sarah Paulson was born in Florida, raised by a single mom in Brooklyn. Sarah Jessica Parker was one of seven or eight kids in Ohio. Amy Adams was born in Vicenza, Italy. And Natalie Portman was born in Jerusalem. Where are their birth certificates? And the beautiful Ruth Negga was born in Addis Ababa, Ethiopia, raised in London — no, in Ireland I do believe, and she’s here nominated for playing a girl in small-town Virginia.


Ryan Gosling, like all of the nicest people, is Canadian, and Dev Patel was born in Kenya, raised in London, and is here playing an Indian raised in Tasmania. So Hollywood is crawling with outsiders and foreigners. And if we kick them all out you’ll have nothing to watch but football and mixed martial arts, which are not the arts.


They gave me three seconds to say this, so: An actor’s only job is to enter the lives of people who are different from us, and let you feel what that feels like. And there were many, many, many powerful performances this year that did exactly that. Breathtaking, compassionate work.


배우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관객들에게 그 느낌이 어떤건지 느끼게 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올해 그렇게 해 낸 대단한 연기들이 정말 정말 많았습니다. 숨막힐 듯 아름답고, 함께 연민하는 연기들이었죠.



But there was one performance this year that stunned me. It sank its hooks in my heart. Not because it was good; there was nothing good about it. But it was effective and it did its job. It made its intended audience laugh, and show their teeth. It was that moment when the person asking to sit in the most respected seat in our country imitated a disabled reporter. Someone he outranked in privilege, power and the capacity to fight back. It kind of broke my heart when I saw it, and I still can’t get it out of my head, because it wasn’t in a movie. It was real life. 


하지만 올해 저를 가장 놀라게 한 연기가 하나 있었죠. 제 가슴에 완전히 사무친 연기였는데요. 연잘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점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것이 효과적으로 목적을 이뤘기 때문이에요. 그 연기는 표적으로 삼은 청중들이 가짜 웃음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리를 원하는 한 남성이, 장애인 기자를 흉내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자에 비해 특권, 권력, 맞서 싸울 능력을 더 가지고 있었어요. 그걸 본 순간 저는 가슴이 무너졌고, 아직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현실이었어요. 



And this instinct to humiliate, when it’s modeled by someone in the public platform, by someone powerful, it filters down into everybody’s life, because it kinda gives permission for other people to do the same thing. Disrespect invites disrespect, violence incites violence. And when the powerful use their position to bully others we all lose. O.K., go on with it.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힘을 가진이가 남에게 굴욕감을 주려는 본능을 드러내면 다른 모든 이의 삶에 퍼져 나갈 겁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도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승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죠.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히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모두 패배할 거예요.



O.K., this brings me to the press. We need the principled press to hold power to account, to call him on the carpet for every outrage. That’s why our founders enshrined the press and its freedoms in the Constitution. So I only ask the famously well-heeled Hollywood Foreign Press and all of us in our community to join me in supporting the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because we’re gonna need them going forward, and they’ll need us to safeguard the truth.


One more thing: Once, when I was standing around on the set one day, whining about something — you know we were gonna work through supper or the long hours or whatever, Tommy Lee Jones said to me, “Isn’t it such a privilege, Meryl, just to be an actor?” Yeah, it is, and we have to remind each other of the privilege and the responsibility of the act of empathy. We should all be proud of the work Hollywood honors here tonight.


"메릴, 배우로 산다는 건 참 특권이지 않아?" 

네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공감을 부르는 연기를 할 수 있는 특권과 그 책임감에 대해서 서로에게 계속 상기시켜줘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밤 이 곳에서 할리우드가 기리고 있는 일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As my friend, the dear departed Princess Leia, said to me once, take your broken heart, make it into art.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제 친구, 레아 공주가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부서진 마음을 추스르고, 예술로 승화시키세요."



<Golden Globes 2017>

Meryl Streep


■ 본문 중에서



# 얼굴에 철판을 깐 회사들,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건 도둑질 - 32p.


몇 년 전 서비스 야근을 합법화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 collar exemption)[각주:1]' 이라는 제도의 법안이 일본 국회에 제출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법안은 노동조합 등이 당연히 거세게 반대하고 나서서 폐기되었으나 지금도 도입을 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듯하다. 특히 경제 단체연합회를 비롯해 경영자 입장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적극 지지한다.



# 레일을 벗어나면 살아남지 못하는 '재도전 불가능' 사회 - 47∼49p.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곧이어 신졸(新卒)[각주:2]로 기업에 취직한다. 그 다음에는 결혼해서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정년까지 일한다. 이것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듯 행복한 삶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행복한 인생'의 본보기가 있다.


이런 삶은 종종 기차 레일에 비유되기도 한다.

(중략)

"이미 깔린 레일 위를 그저 달리기만 하는 인생이 무슨 재미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레일을 벗어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예를 들어 대학 재학중에 취업활동을 시작하지 않아 신졸로 회사에 들어가는 코스를 벗어났다고 해보자.

알다시피 대부분 기업들은 신졸자가 아닌 구직자는 적극적으로 채용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아예 모집 대상에 기졸업자를 넣지 않는 회사도 많다. 신졸이라는 패를 잃은 시점에서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놀랄 만큼 줄어든다.

신졸자와 기졸자 사이에 결정적인 능력 차이는 없다. 그저 구직활동에 나서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을 뿐인데 취직하는 일 자체가 가시밭길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 그렇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 50∼51p.


우리 사회는 일단 레일을 벗어나면 갑자기 인생이 '하드 모드'로 바뀐다. 

그렇다고 레일을 벗어난 사람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제각각 다르므로 당연히 다양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지 않아도 좋다. 회사를 옮겨다니는 것 또한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딴 길로 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 곧바로 회사에 취직해 정년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삶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레일이 딱 하나뿐이고, 그 레일을 벗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어려워진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도상 설계 실수다.



# '일님'의 광신도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 56p.


일을 위해 사는 것도 좋고, 가족이나 취미를 위해 사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다. '일을 적당히 하는 대신 사생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고 싶다'는 삶 역시 충분히 합리적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런 사람들이 매일 야근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하고 싶다, 보람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까 최대한 편한 일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나?

'일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행복' 이라는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국 가치관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행위다.

그야말로 '노도교(勞道敎)'의 광신자가 입교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교의를 밀어붙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 직장인의 눈치 게임 : 아무리 바보 같더라도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따라드릴 수밖에 - 124∼126p.


어쨌든 '모두'의 행동에 맞춰 어울리는 것이 직장을 지배하는 암묵적인 규칙을 어기지 않고 동료들과 불화 없이 지낼 수 있는 기본적인 비결인 셈이다.

이런 '동조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의사를 유지하는 일은 군대식 신입 연수에서 세뇌되지 않고 버티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연수는 그 시기만 잘 버티면 끝나지만 직장에서 가하는 '동조 압박'은 그곳에서 일하는 한 계속 존재할 테니 말이다.


애당초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나 계약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서구와 달리 '동조 압박'에 아주 약하다.

학교든 대학 동아리든 혹은 이웃과 관계를 맺는 지역 커뮤니티든 이 사회에서 모두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이단 취급을 받으며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협조성'이다. '다양성의 존중'이나, '개인주의' 같은 사고방식은 협조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힘을 잃는다.

직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널리 퍼진 규칙이 아무리 불합리하고 바보 같더라도 '모두'가 따른다면 그 어느 개인도 거부하거나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삶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괴로우면 언제든 도망쳐도 된다. - 143p.


일단 무너지면 원상 복귀에 시간이 걸린다. 상황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무너질 때까지 가느니 차라리 전부 다 내던지고 도망쳐버리자. 적절한 시점에 도망쳐서 몸과 마음을 지켜내자.


도망칠 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책임감'이다.

'내가 도망치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남은 사람들도 힘들 텐데 나 혼자 무책임하게 굴 수는 없다.' 이런 책임감 때문에 '이거 도망치면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다.

책임감이 강한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정말 한계에 몰렸다면 주변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내 몸부터 지켜야 한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결국 주변에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지 않은가?



# '남들과 똑같이' 대신 '내게 가장 어울리게' - 165∼166p.


본래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모두와 똑같이'란 불가능하다.

일이 좋아서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따면, 일이 싫어서 최대한 편한 직장을 구해 매일 일찍 퇴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저마다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사실은 '남들과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게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좀더 소중히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충 '남들에게 맞추는' 일에만 에너지를 쓰면서 내키지 않는 인생을 살다가 끝나게 된다.


'보람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혹은 '결혼해서 내 집을 마련해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같은 생각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가치관 중 하나다.

이러한 생각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면 그렇게 살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여기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나와 맞지 않는 가치관은 결국 타인의 것일 뿐이다. 공감하지 못하면서 그런 가치관을 따라 산다면 타인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기준이다.

세상의 평가가 아무리 높더라도 나의 평가 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괜히 거기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세상에서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나의 평가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내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살아줄 수 없다.

내 행복은 나의 주관으로 판단하면 된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오우아, 2016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국내도서
저자 : 히노 에이타로 / 이소담역
출판 : 오우아 2016.05.25
상세보기


  1. 일정 연봉 이상을 받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제도. 야근 등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이 없는 대신 추후 업무 성과를 토대로 임금을 받는다.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대학을 갓 졸업한 것을 말한다. 일본에는 매년 신졸 학생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채용을 진행하는 특유의 관행이 있다 [본문으로]

■ 본문 중에서


#1-1 이해하기 쉬운 알고리즘이 좋은 알고리즘은 아니다

#1-2 작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문제 크기의 유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25∼29p.


그림2. 계산량을 증가시키는 방법



1) Log(n) 배 : 데이터의 양이 10배가 되면 계산량은 3.3배 (문제의 복잡도에 의해 증대)

2) N 배 : 데이터의 양이 10배가 되면 계산량도 10배 (문제의 크기에 의해 증대)

3) n log(n) 배 : 데이터의 양이 10배가 되면 계산량은 3.3 * 10 = 33배 (문제의 복잡도와 크기에 의해 증대)

4) n2 배 : 데이터의 양이 10배가 되면 계산량은 100배 (문제의 난이도와 크기 이외에 다른 요인에 의해 증대)


데이터의 양에 대해 계산량이 어떻게 증가하는지에 대한 지표로서 알고리즘 세계에서는 "Order 표기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Order 표기법은 "자리수의 문제"입니다.


Order 표기법으로 위의 1)-4)를 표현하면

- 1) 문제의 복잡도에 의해 계산량이 증대하는 O(log(n)) 알고리즘

- 2) 데이터의 양에 의해 계산량이 증대하는 O(n) 알고리즘

- 3) 문제의 복잡도와 데이터의 양에 의해 계산량이 증대하는 O(n log(n)) 알고리즘

- 4) 문제의 복잡도와 데이터의 양 이외에 다른 요인에 의해 계산량이 증대하는 O(n2)알고리즘 


그림3. 문제의 복잡도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2-6 이진검색 트리에 "익숙해지기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 - 56p.


이진트리 검색이란 "이진검색 트리"라고 불리는 데이터 구조를 만든 다음, 이 데이터 구조를 구성하는 단순한 규칙인

좌측 자식 < 부모 ≤ 우측 자식

에 의해 데이터를 검색하는 방법입니다. 데이터는 이미 정렬되어 있다고 합시다. 이번 장에서 다뤘던 알파벳의 경우 ABC 순으로 정렬되어 1∼26의 번호가 부여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이진검색 트리구조에 나열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진검색 트리구조의 규칙은 매우 단순합니다. "좌측자식 < 부모 ≤ 우측 자식"을 만족시키기만 한다면 어떤 식으로 정렿해도 괜찮습니다. 이 단순한 규칙에 의해 강력한 검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0 계산하기 전에 계산에 필요한 시간을 알지 못해도, 처리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Order 표기법) - 85∼86p.


"Order 표기법" 이라는 것은 규모(order)의 증가/감소의 유형을 주목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O(□) 으로 표기합니다. "O"는 Order 의 "O"입니다. "Zero"가 아니므로 주의하세요. "□"에는 정수 혹은 수식이 들어갑니다. 

예1) 정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판단한다 - O(1)

예2) 순차검색 - O(n)


# "3 lon n"과 "n log n"은 왜 다를까? - 98∼99p.

→ O(log n)과 O(n log n)은 다르다.


문제의 규모, 즉 "n"이 커졌을 때 "log n"과 "(log n) + 3"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O(log n) = O((log n)+3) 과 같이 됩니다. 


여기서 O(log n)과 O(3 log n)의 경우는 어떨까요?

3 log n = log (n3) 입니다.

"n"과 "n3"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c=n"과 "c=n3"의 그래프(그림6)을 살펴본다면 일목요연하게 보입니다.


그림8. O(log n)과 O(n log n)의 그래프



"n log n"은 "log n" 과는 매우 다른 유형으로 빠르게 증가합니다. 문제의 규모에 대해 계산량의 증가 방식의 유형이 "n log n인데 매무 빠르게 증가한다"고 느껴질 경우에는 "n log n"의 유형으로 나타나지 않았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4-2 Order 표기법을 충분히 활용하기 - 105p.


표1. 계산 규모의 증가 유형 (log = log10)

문제의 규모 

O(1) 

O(log n) 

O(n) 

O(n log n) 

O(n2

 1

 1 

 0.1 

 1 

 0.1 

 1

 10

 1

 1

 10

 10

 100

 100

 1

 2

 100

 200

 10,000

 1000

 1

 3

 1,000

 3,000

 1,000,000


실제로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O(n log n) 유형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계산량 폭발"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록. 알고리즘 서적을 읽어본다 - 158p.


A-1: 초급편 / 유키 히로시의 「프로그래머, 수학으로 생각하라」, 프리렉, 2014

A-2: 중급편 / G.T.Heineman의 「사전처럼 바로 찾아 쓰는 알고리즘」, 한빛미디어, 2008

A-3: 상급편 / D.E.Knuth의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1」, 한빛미디어, 2006




<가장 쉬운 알고리즘 책>

미와 요시코 지음, 김대희, 장재호 옮김

비제이퍼블릭, 2014


가장 쉬운 알고리즘 책
국내도서
저자 : 미와 요시코 / 김대희,장재호역
출판 : 비제이퍼블릭 2014.09.29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 지은이의 말 - 6p.


개발자 문화가 뭐냐고 묻는 사람을 위해서 LESS라는 공식도 준비해두었다. Learn(배우고), Enjoy(즐기고), Solve(해결하고), Share(공유하라). 이렇게 네 가지 속성을 모으면 그게 개발자 문화다.



#02 부정사용방지 시스템의 배신 - 22∼23p.


신용카드 회사에 있어서 부정사용방지 시스템이란 구글에 있어서 검색 엔진,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서 윈도우 운영체제, 월가의 은행들에 있어서 금융거래 시스템에 해당하는 핵심 자산이다. 고객의 신뢰를 통해서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업무 분야인 것이다. 그러한 핵심 자산을 개발하는 업무를 외부의 회사에 맡겼다는 것부터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개발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신용카드 회사가 '부정사용방지'라는 업무를 핵심이 아닌 곁가지 업무로 생각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들을 신용카드 회사가 아니라 불신카드 회사로 불러야 마땅한 이유다.



#03 카드 정보 유출, 더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 24∼29p.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우선 알려진 앎(known knowns)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알고 있음을 안다. 알려진 모름(known unknowns)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모름(unknown unknowns)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중략)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모른다. 전 세계의 해커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경제적으로 발전한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수준은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이러한 해커들과의 싸움은 특정 개인이나 부서에서 일시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멋진 백신 프로그램이나 사이버수사대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장관이나 대통령이 나선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 없는 지루한 전쟁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문화전쟁이다. 개발자들을 위한 개발자들의 건강한 문화가 정립되지 않는다면 결코 이길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19 창업국가의 비밀 - 105p.


댄 세노르와 사울 싱어가 쓴 「Start-Up Nation」 이라는 책은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말로 「창업국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 (중략)

이 책을 언급한 이유는 '처츠파(chutzpah)'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하면 '당돌함' 혹은 '뻔뻔스러움' 정도가 될 처츠파는 이스라엘의 문화를 한마디로 정리해주는 키워드다. 세노르와 사울은 이스라엘의 군사 문화가 개개인들에게 '처츠파'라는 철학을 심어준다고 주장했다. 처츠파는 스스로 생각하고, 어떤 상황이 자기가 내린 판단과 부합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논쟁하고, 스스로의 믿음에 따라서 행동하는 철학이다. 장군이 내린 명령이라고 해도 현장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으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무조건적인 복종과 개성의 말살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군대와 정반대다.



#40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 - 208p.


인공지능은 바다다. 지금 수많은 강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 거대한 바다 앞에는 리눅스와 윈도우의 구분 같은 것은 개울물에 불과하다. 자기가 선호하는 회사, 생태계, 테크놀로지 스택에 사로잡힌 채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 미래를 제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폴리글랏 프로그래밍조차 협소하다. 상황에 따라서 자유롭게 굽히고 펴는 능력을 의미하는 능굴능신(能屈能伸)만이 살길이다. 인공지능보다 대범하고, 인공지능보다 넓은 상상을 펼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47 그대의 힘으로 생각하라, 가차 없이 질문하라 - 241p.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① 자기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기회, 혹은 ② 상대방의 질문을 내 생각대로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정답 혹은 오답이라는 개념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을 받으면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한다. 오답을 말하는 것이 질문한 사람에 대한 무례라고까지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오래전에 루카치라는 철학자는 이러한 욕망의 전이를 물화(物化, reific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reification은 뜻은 다르지만 컴퓨터 과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정리해보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대부분은 인문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도 심각하게. 우리는 의심할줄 모르고, 질문할줄 모르며, 욕망 앞에서 솔직해질 줄 모른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작게는 코딩할 때 그렇고, 크게는 인생이 그렇다. 



#49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 248∼252p.


프로 

아마추어 

 지키는 원칙과 원리가 있다.

 주어진 일을 아무거나 한다.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데 관심을 둔다.

 일을 끝내는 데 관심을 둔다.

 잘못된 일을 지적하거나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척 한다.

 일관성이 있고 안정감이 있다.

 예측하기 어렵고 안정감이 없다.

 책임을 진다.

 책임을 회피한다.


'진짜가 될 때까지 진짜처럼 행동하라(Fake it till you make it)'는 원리는 프로그래밍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널리 회자되는 행동요강이다.

-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기술과 재능을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 되고 싶은 부류의 사람이 이미 된 것처럼 행동하라.

- 승부가 이미 끝났으며 자신이 크게 승리한 것처럼 행동하라.

- 처음 가보는 길을 이미 여러 번 왕래한 길인 것처럼 여기며 행동하라.


(중략)


"성공을 거두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사람들 눈에 자기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두 손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서 마이크를 손에 쥘 수조차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간단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이 그대의 블로그 글을 읽고 완전히 잘못된 바보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 그대를 비웃는 것을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으면 된다. 그뿐이다." - 존 써메즈(John Sonmez), 「소프트 기술(Soft Skills」


"캐리어를 통틀어서 저는 9,000번의 슛을 실패했습니다. 300번 가량의 시합에서 패했고요. 동료들이 믿고 패스해준 마지막 슛 찬스를 26번이나 놓쳤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저는 끊임없이 실패를 되풀이했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저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 마이클 조던"



#55 개발자를 위한 아는 척 매뉴얼 - 278p.

임백준의 '개발자를 위한 머신러닝' 

[ source : https://mva.microsoft.com/ko/training-courses/-machine-learning-jump-start-10288?l=bweEISc6_4204984382 ]





<임백준의 대살개문>

임백준

한빛미디어, 2016


임백준의 대살개문
국내도서
저자 : 임백준
출판 : 한빛미디어 2016.05.01
상세보기


[ source : http://www.cgpgrey.com/blog/humans-need-not-apply ]




Creative Labor


Creativity may feel like magic, but it isn't. The brain is a complicated machine -- perhaps the most complicated machine in the whole universe -- but that hasn't stopped us from trying to simulate it.


There is this notion that just as mechanical muscles allowed us to move into thinking jobs that mechanical minds will allow us all to move into creative work. But even if we assume the human mind is magically creative -- it's not, but just for the sake of argument -- artistic creativity isn't what the majority of jobs depend on. The number of writers and poets and directors and actors and artist who actually make a living doing their work is a tiny, tiny portion of the labor force. And given that these are professions that are dependent on popularity they will always be a small part of the population.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oem and painting based economy.


Oh, by the way, this music in the background that your listening to? It was written by a bot. Her name is Emily Howel and she can write an infinite amount of new music all day for free. And people can't tell the difference between her and human composers when put to a blind test.


Talking about artificial creativity gets weird fast -- what does that even mean? But it's nonetheless a developing field.


People used to think that playing chess was a uniquely creative human skill that machines could never do right up until they beat the best of us. And so it goes for all human talent.




어쩌면 10년, 20년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에 지금 우리가 프로그래밍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기계가 대신 해주고 있을지 모른다. 그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과거에 살았던 우리를 보면서 마치 책을 인쇄하지 못해서 일일이 손으로 필사해서 복사하던 시대를 되돌아보는 지금 우리의 심정이 될 것이다.

- <임백준의 대살개문> 中



■ 본문 중에서



#08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을 찾아라 - 32∼33p.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20 대구(對句)를 활용하자. 그러면 절반은 온 것이다 - 67p.


여당은 현실에 살고 야당은 미래에 산다.

(중략)

남녀가 이별했다. 남자는 과거를 후회했고, 여재는 미래를 걱정했다.



#사례둘 너무나 솔직담백한, 그래서 존경스러운... - 182∼183p.


"아내 외에 다른 여성에게 끌린 적은 몇 번입니까?"

"비밀이다!"

"보신탕을 먹어 본 적 있습니까?"

"물론 있지!"

"정치가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로비스트! 건강한 로비 문화를 만들고 싶다."

"겨울엔 내복 입으십니까?"

"안 입고 살았는데 올해는 귀하신 몸이 되어서 입었다."

"외모 중 가장 자신 있는 곳과 못마땅한 곳은 무엇입니까?"

"자신 있는 곳도 없고, 자신 없는 곳도 없다. 다만 머리카락 다듬기가 어렵다."

"대통령이 되면 잃을 것 같은 3가지는?"

"자유, 시간, 돈"

"대통령 의전 차량이 외제차인데, 대통령이 되면 국산차로 바꿀 용의는 없습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 있는 것 그냥 쓰지 뭘!"


정말로 계싼 좀 해 보고 한번쯤 더 생각해 보면 좋으련만. 그리고 어떻게 대답을 하면 더 많은 표를 끌어올 수 있을지 고민을 좀 하면 좋으련만. 이제는 좀 그렇게 따져 봄직도 한데, 도무지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참, 이분, 어떻게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록 참회록_ 이제 당신을 내려놓습니다 - 237p.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 하면 자네들조차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 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이 말에 시사(示唆)가 있었다. 암시가 숨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되었따. '이 글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네들과의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었떤 것이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왜 몰랐을까? 그 안타까운 호소를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질곡의 봉하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무의식이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어쩌면 집필팀의 해체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또 우리를 붙잡을 힘이 없었던 게 아닐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붙잡아야 하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는 이들을 붙잡을 근거가 없다고 포기해 버린 게 아닐까? 지난 반년 동안 집필팀은 말과 글에 관한 한 그의 수족 역할을 해 왔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의 한 대목에서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의 근거를 확인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꽉 막힌 심장에서 피가 역류했다. 깊은 후회의 감정이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눈시울의 뜨거움도 없었다. 차는 부산대 양산병원을 향해 달렸다. 이십년 전 처음 대면했던 초선의원 노무현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떠올랐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윤태영

책담, 2014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국내도서
저자 : 윤태영
출판 : 책담 2014.12.12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 프롤로그 - 2015 겨울, 노희경

말만 남겨진 삶이 아니길

말이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이길

말이 목적이 아니길

어떤 순간에도 사람이 목적이길



# 그들이 사는 세상 - 13p.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 그들이 사는 세상 - 24p.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모든 게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세상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상태.

내가 가는 길이 낭떠러지인지 모르는 상태.


우리는 가끔 이런 화이트아웃 현상을 곳곳에서 만난다.

절대 예상치 못하는 단 한순간.

자신의 힘으로 피해 갈 수도 없는 그 순간,

현실인지 꿈인지 절대 알 수 없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어느 한 날 동시에 찾아왔다.

그렇게 눈앞이 하얘지는 화이트아웃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잠시 모든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 울음을 멈춰야 한다.

근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그가 틀렸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 꽃보다 아름다워 - 36p.

네가 다시는 날 찾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다시 보지 못해도

그게 사랑이 없어서는 아닐 테니까.

그래도 아마 나는...

아주 오래도록 널 기다릴 것 같다.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시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널 만나 내 인생 전부를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 굿바이 솔로 - 52p.

사람들은 늘 영원한 사랑에,

변치 않을 사랑에 목을 매며 산다.

계절이 변하는 게 당연하듯,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서 미움으로

미움에서 증오로, 다시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 역시 당연한데,

우린 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 그들이 사는 세상 - 53p.

6년 전 그와 헤어질 때는 솔직히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때 그는 단지 날 설레게 하는 애인일 뿐이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와 함께 웃고 싶고,

그런 걸 못하는 건 힘이 들어도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젊은 연인들의 이별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그런데 이번엔 미련하게도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었다.

그게 잘못이다.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내 인생의 멘토였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는 선배였고, 우상이었고, 삶의 지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뜻했다.

이건 분명한 배신이다.


그때,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

그와 헤어진 게 너무도 다행인 몇 가지 이유들이 생각난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작 두어 가진데, 그와 헤어져선 안 되는 이유들은

왜 이렇게 셀 수도 없이 무차별 폭격처럼 쏟아지는 건가.

이렇게 외로울 때 친구들을 불러 도움을 받는 것조차 그에게서 배웠는데,

친구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져도 된다는 것도 그에게서 배웠는데,

날 이렇게 작고 약하게 만들어놓고, 그가 잔인하게 떠났다.



# 그들이 사는 세상 - 56p.

미치게 설레던 첫 사랑이 마냥 맘을 아프게만 하고 끝이 났다.

그렇다면 이젠 설렘 같은 건 별거 아니라고,

그것도 한때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 만도 한데,

나는 또다시 어리석게 가슴이 뛴다.

그래도 성급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지난 사랑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성의 시간이 끝나면,

한동안은 자신을 혼자 버려둘 일이다.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다시 시작할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 버려주어서 고맙다 - 67p.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져야 옳다

미안해 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 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은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대 잘못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오십보백보다

더 사랑했다한들 한계절 두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 굿바이 솔로 - 143p.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못할 때는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을 할 때는

그 사랑이 깨질까 봐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우리는 어리석게 외롭다.



# 그들이 사는 세상 - 162p.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렘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렘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설렘이 무너지고,

두려움으로 변질되는 것조차

과정임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224p.

나는 그 말만은 해야 했다.

상처뿐인 세상에서 인생 별거 아니라고,

그냥 살아지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 나에게,

그래도 너는...

내가 인간답게 살아볼 마지막 이유였는데,

나도 너에게 그럴 수는 없느냐고...

이 허무한 세상,

네가 살아갈 마지막 이유가 나일 수는...

정말 없는 거냐고.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233p.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었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 그들이 사는 세상 - 247p.

그녀에게 나는 드라마처럼 살라고 했지만,

그래서 그녀한테는 드라마가

아름답게 사는 삶의 방식이겠지만,

솔직히 나한테 드라마는 힘든 현실에 대한 도피다.

내가 언젠가 그녀에게 그 말을 할 용기가 생길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녀조차도 나에겐 어쩌면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녀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나 같은 놈에겐 드라마 같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니라고 해줄래? 너는 현실이라고.





<겨울가면 봄이오듯 사랑은 또 온다>

노희경

북로그컴퍼니, 2015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국내도서
저자 : 노희경
출판 : 북로그컴퍼니 2015.12.28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1 논증(論證)의 미학(美學) 


- 18-19p.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생각이 곧 말이고, 말이 곧 글이다. 생각과 감정, 말과 글은 하나로 얽혀있다. 그렇지만 근본은 생각이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다면 무엇보다 생가글 바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 기준을 바꾸고 감정에 휘둘려 논리의 일관성을 깨뜨리면 산문을 멋지게 쓸 수 없다.



#2 글쓰기의 철칙


- 50p.

문학 글쓰기는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무언가를 지어내는 상상력,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훨씬 덜하다. 조금 부풀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문학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이야기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글, 살면서 느끼는 것을 담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62p.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 74 - 75p.

1.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2. 그 주제를 다루는 데 꼭 필요한 사실과 중요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3. 그 사실과 정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4. 주제와 정보와 논리를 적절한 어휘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3 책 읽기와 글쓰기


- 108p.

무엇보다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린이 영어몰입교육은 우리말로 생각하는 능력을 훼손할 수 있다. 언어는 단순한 말과 글의 집합이 아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하고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데에도 언어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모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잘하기 어렵다. 외국 유학을 하는 경우에도 외국어를 물 흐르듯 하면서 모국어가 신통치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그 반대가 낫다. 


- 118 - 119p.

시간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말보다 먼저 글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는 선후를 가리기 어려워진다. 글이 말을 얽어매고 언어가 생각을 구속한다. 하지만 언어에 한정해서 보면 글이 아니라 말이 먼저다. 글을 쓸 때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 못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청각신경이 포착한 음성 정보를 해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아기의 뇌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더 많은 뉴런을 배치하고 교신을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반쪽짜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찌찌' '때때' '응가' 같은 반쪽짜리 말을 가르치고,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부모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아이의 뇌는 쉬운 숙제를 받은 학생처럼 느긋해진다.



#4 전략적 독서


- 135 - 136p.

우리말이든 영어든, 자주 쓰는 단어 몇백 개와 몇 가지 형태의 문장만 잘 구사하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 현안이나 자연과학의 쟁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글로 쓰라고 하면 더 어려워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견해를 세우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어휘를 몰라서 그런 경우가 많다. 뭘 몰라서 말도 못 하고 글도 못 쓰는 것이다. '침묵은 금' 이라는 격언이 늘 타당한 것은 아니다. 적절한 때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일부러 침묵을 지키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지만 뭘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무는 것은 그렇지 않다. 모든 침묵을 다 금으로 대접하면 무지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침묵이 언제나 금이 것은 아니다.

텍스트를 생산하려면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꼭 필요한 개념을 아예 모르면, 또는 그 개념을 알아도 다른 개념과의 관계를 잘 모르면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토론을 하기는 더 여럽다. 글은 여러 번 고치고 다듬어서 발표할 수 있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생방송 토론에서 말을 하는 것은 일필휘지로 글을 써서 교정하지도 않고 출판하는 것과 같다. 칼럼을 쓰는 것보다 토론하기가 더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또 어휘를 많이 알아야 옳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배우면서 어휘를 익히고,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문장을 익힌다. 똑같이 많은 책을 읽어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어휘와 문장의 양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데 특별하게 도움이 되는 책과 별로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 것이다.


<토지> 

- 137p.

어휘를 늘리는 동시에 단어와 문장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즐기고 익힐 수 있는 책으로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1부 네 권만 읽어도 된다. 2부 다섯 권까지 읽으면 더 좋다. 논리적인 글과 예술적인 글은 서로 다르지만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논리 글도 최고봉에 오르면 예술 근처에 갈 수 있다.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읽으면 논리 글쓰기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굳이 단어나 문장을 암기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다섯 번 열 번을 반복하면 박경리 선생이 쓴 단어, 단어와 단어의 어울림,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저절로 뇌에 '입력'된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그 단어와 문장을 자기도 모르게 '출력'하게 된다. 


- 140p.

나는 <토지>를 우라밀 어휘와 문장의 보물 창고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꺼내 써도 되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보물 창고. 내게 <토지>는 그런 책이다. 나는 박경리 선생을 만난 적이 없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았다. 경남 통영 토지문학관 위편 언덕에 있는 묘소에 뒤늦은 인사를 드렸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언론인 리영희 선생과 함께 박경리 선생을 글쓰기의 은사(恩師)로 여긴다.


<자유론> 

- 145p.

<자유론>에서 밀은 단 하나의 질문을 다루었다. 어떤 경우에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가? <자유론>은 놀라운 책이다. 우선 내용이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 개인의 자유와 관련한 중대한 쟁점을 철학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해명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 훌륭한 내용을 사회에 대한 기초 지식과 평범한 수준의 독해력만 있으면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썼다는 것이다. 밀은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라도 지극히 평범한 어휘와 읽기 쉬운 문장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코스모스>

- 146p.

유럽 산업혁명 이후 몇백 년 동안 과학은 세분화와 전문화의 길을 걸었으며 그런 경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학문 분야를 잘게 쪼갠다고 해서 인간과 사회, 국가와 역사, 생명과 자연, 지구와 우주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더 잘 이해하고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전문화 때문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이 생겼다.

이런 문제점을 직시한 학자들은 혼자서 또는 집단적으로 자잘하게 쪼개놓은 학문의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 '융합(融合)' '통섭(統攝)' '학제간연구(學際間硏究)' 같은 신조어는 바로 이런 흐름을 대표한다. <코스모스>는 그 흐름을 선도했고 또 대표하는 책이다. 내용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문장이 아름답기도 하다.


-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마음의 과학>, 와이즈베리

-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바오

- 신영복, <강의>, 돌베개

-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한국경제신문

-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출판사

-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

-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어크로스

-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갈라파고스

- 존 슽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홍신문화사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 케이트 밀렛, <성性 정치학>, 이후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서해문집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히히만>, 한길사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5 못난 글을 피하는 법


- 166p.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멋진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6 아날로그 방식 글쓰기


- 223 - 224p.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많이 써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면 무조건 쓰는 게 답이다. 진부한 처방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다 낡은 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글쓰기 근육을 기르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우리 몸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자유롭고 상념은 스쳐간다. 생각하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버스 안에서든 샤워 꼭지 아래서든, 아니면 횡단보도 위에서든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아, 이건 중요한 생각이네. 꼭 기억해놔야겠다. 그런 생각도 적어두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 이건 중요하니까 잊지 말아야지! 그렇게 결심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도 정작 그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는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생각과 느낌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우리 뇌는 엄청난 용량을 지녔지만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7 글쓰기는 축복이다


 - 257 - 258p.

왜 글을 쓰는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한테 왜 쓰냐고 묻다니, 필요 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왜 쓰는지 모르면 잘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물론 글쓰기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인생을 채운다. 내면에 있는 생각, 감정, 욕망을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삶이 답답해진다. 각자의 내면에 무엇이 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이생이 달라진다. 명품백과 화려한 보석이든 양장본 고전으로 가득한 서가(書架)든, 어떤 욕망과 특정하 표현형식이 다른 것보다 더 고결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글쓰기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그 특별함 때문에 사람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하고, 또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첫째, 세상이 글쓰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때때로 쓰기 싫어도 글을 써야만 한다. 학업과 진학, 취업을 위해서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글을 써야 한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인해 인터넷 메신저든 전자우편이든 글로 소통하면서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전문 직종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사는 데에도 지장이 많다.

둘째,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이를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우러러본다. 글쓰기 실력을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지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글은 글쓴이의 지능, 지식, 지성, 가치관,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표현할 내면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는 게 많아야 한다. 다양한 어휘와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 264p.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항소이유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류 시 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요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집단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ㆍ사회적ㆍ도덕적 수준의 반영인 동시에 미래의 그것을 결정하는 규정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행법이라 함) 위반 혐의로 형사소추되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본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의 어떠한 정치적ㆍ사회적ㆍ도덕적 상태의 반영이며 또 미래의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규명함과 동시에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 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항소이유서는,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성령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 하겠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은 법률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 속에서 ‘책임’ ‘의무’ ‘과실’ 등등의 어휘는 특별한 수식어가 없이 사용된 경우, 그 앞에 ‘윤리적’ 또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방합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이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에는 윗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사건을 정의(定義)하고 나서 그것을 설명한 다음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현정권(본 피고인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제 5 공화국이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정부대신에 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각자가 취한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이 글의 목적을 달성코자 합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 의해서는 ‘서울대 학원 프락치사건’으로, 정권과 매스컴에 의해서는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으로 또는 간단히 ‘서울대 린치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명칭의 차이는 양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본 피고인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의하자면 이는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ㆍ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 4반세기에 걸쳐 이어온 학생운동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혈사(血史)와 아울러 가열되어온 독재정권의 학원 탄압사를 살펴 보아야 할 터이지만, 이 글이 항소이유서임을 고려하여,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ㆍ3사태), 1974년의 민청학련 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그치기로 하고 현정권의 핵심부분이 견고히 형성되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상황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ㆍ사회적 갈등ㆍ정치적 비리ㆍ문화적 타락은 모두가 지난 날의 유신독재 아래에서 배태ㆍ발전하여 현정권 하에서 더욱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현정권은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ㆍ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묻은 권력입니다.


현정권은 정식출범조차 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입니다. 현정권이 말하는 ‘새시대’란, 노골적ㆍ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이며,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하며,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시키려 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시스트 국가의 말로가 온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대규모 전쟁도발과 패배로 인한 붕괴였거나,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조차도 그 국민에게 심대한 정치적ㆍ경제적 파산을 강요한 채 권력내부의 투쟁으로 자멸하는 길뿐임을 금세기의 현대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은 전자의 대표적인 실례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등장했던 칠레ㆍ아르헨티나 등의 군사정권, 하루저녁에 무너져버린 유신체제 및 지금에야 현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따위는 후자의 전형임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지난 수년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한 노동운동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적 종교인, 진실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한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민주제도의 회복을 갈망해온 민주정치인들의 선봉에 섰던 젊은 대학인들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아래서라면 단 한주일도 유지될 수 없는 현 군사독재정권이 그토록 존귀한 우리 조국의 대리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가질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정권은 12ㆍ12 군사쿠데타 이후 4년동안 무려 1,300여명의 학생을 각종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1,400여명을 제적시키는 한편 최소한 500명 이상을 강제징집하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바로 병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는 동시에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하는 미증유의 학원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 1982년 기관원임을 자칭한 괴한에게 어린 여학생이 그것도 교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을 때조차, 최고위 치안 당국자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하여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이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 발본색원하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하였을 정도입니다.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전경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울린 일은 중국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ㆍ황정하ㆍ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83년 12월의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주전선(主戰線)이 교문으로 이동하였다는 단 한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지난해 9월 총학생회 부활을 전후하여 더욱 강화되었던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교문앞 검문검색, 미행과 강제연행 등으로 인해 양자간의 적대감 또한 전례없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 즉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학원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ㆍ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ㆍ감금ㆍ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폭력 자체가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위의 이유에 의해서 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ㆍ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ㆍ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ㆍ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ㆍ사기ㆍ추행ㆍ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형구의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초생사건 때처럼) 이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ㆍ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ㆍ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로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민한당사 농성사건, 주요 학생회 간부들의 제적ㆍ구속,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정권과 매스컴의 대공세, 서울대 시험거부 투쟁과 대규모 경찰투입 등 심각한 충격파를 몰고 왔으며 공소 사실을 거의 전면부인하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사건종료 다음날인 9월 28일 전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과 뒤늦게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겸 사회대학생장 오재영군 등이 지도한 민한당사 농성은 자연발생적ㆍ비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부도덕한 학원사찰 및 정권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조직적 투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로 가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법률적ㆍ윤리적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학원사찰의 존재라는 별개의 정치적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투쟁은 그 자체로서 완전히 정당한 행위였다고 본 피고인은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인 9월 29일 저녁 학교당국은 이정우ㆍ백기영ㆍ백태웅ㆍ오재영 등 4명의 총학생회 주요간부를 전격적으로 제명 처분하였으며 본 피고인은 9월 30일 하오 경찰에 영장없이 강제연행 당한 후 며칠간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이 가장 먼저 연행당한 것은 미리 도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도피하지 않은 것은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도망칠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경찰ㆍ검찰에서의 조사 및 법정진술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한 사소한 착오 이외에 여하한 수정ㆍ번복도 한 바 없었으며 오직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따름입니다. 어쨌든 서울시경국장은 10월 4일 소위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의 수사결과를 도하 각 신문ㆍTVㆍ라디오를 통해 발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4명의 외부인을 감금ㆍ폭행한 이 일련의 사건이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합의 아래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0월 4일 이전에 경찰에 연행된 몇몇 학생들 중(본 피고인을 포함) 어느 누구도 이 발표를 뒷받침해줄 만한 진술을 한 바 없으며, 이후에 작성된 구속영장ㆍ공소장 및 관련학생들의 신문조서들이 모두 이 발표의 기본선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임은, 만일 이 모든 서류를 날짜별로 검토해 본다면,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10월 4일의 경찰발표문의 본질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견강부회ㆍ침소봉대ㆍ날조왜곡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폭력지향적인 파괴활동으로 중상모략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물론 현정권 자체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비조직적ㆍ우발적으로가 아니라, 학생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몇몇 관련 학생뿐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전체를 비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복학생협의회 대표 등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어떤 행위를 실제로 했는가에 관계없이 선전을 위한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은 지난 수십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정권은 막 출범한 서울대 학생회의 주요 간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 부술 수 없는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기에만 급급하여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왔습니다. 사건 발생후 일개월도 더 지난 작년 11월, 관악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김도형ㆍ손택만군 등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소사실과 일치하는 허위자백을, 형사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짜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즉 경찰은 본 피고인들이 ‘폭행법’을 위반하였다는 증거를 바로 그 ‘폭행법’을 위반하여 관련된 학생들을 고문함으로써 짜낸 것입니다. 그 짜내어진 허위자백이 증거로 채택된다는 사실을 못 본 체 하더라도 ‘법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혀 정당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심인으로서는 복종의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지난날의 긴급조치나 현행 ‘집시법’과 달리 이 ‘폭행법’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수 있는 법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인은 현정권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 법 앞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과분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ㆍ고문하는 각 대학 앞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그 때문에 ‘폭생법’ 위반으로 형사소추당했다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9일,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이 주최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그녀 자신 제적학생이면서 역시 고려대학교 제적학생인 서원기씨의 부인 이경은씨가 동대문 경찰서 형사대의 발길질에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사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부는 이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서도, 검찰은 수사조차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 역시 여러 차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폭행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법의 보호를 요청할 엄두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협박 또는 폭행을 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피고인은 폭력법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 현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바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이 날조한 사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편에 있어서는 정권과 매스컴이 공모하여 널리 유포시킨 일반적인 편견이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고문수사를 통해 짜낸 관련 학생들의 허위자백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과실과 본 피고인 자신의 법률적ㆍ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렇듯 정권의 부도덕을 소리 높이 성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짜학생에 대한 연행ㆍ조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가한 폭행까지를 정당화할 의향은 없습니다. 조사를 위한 감금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하며 폭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폭력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상 다 폭력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지만, 무력한 개인에게 다중이 가한 폭행은 비록 그것이 경찰에 대한 이유있는 적대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온 고문을 흉내낸 것이라 할지라도 학생운동의 비폭력주의에서 명백히 이탈한 행위라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폭행을 가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은 것 또한, 비록 그것을 어렵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사정이 개재됐다손치더라도, 학생들이 가진 윤리적 결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 폭행과 절대로 무관하며사건 전체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여 틀림이 없을 총학생회장 이정우군이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 항소조차 포기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그 누구도 선뜻 폭행의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윤리의 공백상태를 어느 정도는 메꾸어 주었다고 본 피고인은 확신합니다.


본 피고인은 역시 언행이나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없지만(지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ㆍ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ㆍ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법률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또한 임신현ㆍ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법률적ㆍ윤리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떠맡기 위해 이정우군처럼 처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한 정권의 음모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 때문에 본 피고인은 사실과 다른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시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고 또 그런 자세로 법정투쟁에 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본 피고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공소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질상 판이한 것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본 피고인은 이 사건의 재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의 계기로 삼으려면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누적된 정권과 학원간의 불신 및 적대감을 배경으로 하여 수명의 가짜학생이 행한 전혀 비합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명백히 부도덕한 정보수집행위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으나 명백히 비합법적인 학생들의 대응행위를 유발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수년간 현정권이 보여준 갖가지 부도덕한 행위들 - 학원내에 경찰을 수백명씩이나 상주시키면서도 온국민에게 거짓증언을 한 치안당국자의 행위, 소위 자율화조치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판 위에서 음성적인 확원사찰을 계속 해온(이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음) 수사기관의 행위,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사건조차 서슴지 않고 날조ㆍ왜곡한 행위 등 - 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위중 비합법적인 부분만을 문제삼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법부 자체는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의 학원난입 행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전후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ㆍ감금마저(폭행부분이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으로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한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결코 학생들의 행위 전부에 대한 무죄선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도덕한 자에 대한 도덕적 경고와 아울러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며, 허위선전에 파묻힌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향상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의 사법부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며, 또 그 정의가 강자(强者)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1심의 재판과정에서 매장당한 진실이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 피고인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높아져 있는 현재의 불신과 적대감의 장벽 위에 분노의 가시넝쿨이 또 더하여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더욱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유사한 사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년간 현정권에 반대했다 하여 온갖 죄목으로 투옥되었던 1,500여명의 양심수 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성한 법정’에서 정의로운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야수적인 유신독재 치하에서도 역시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전대미문의 악법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보도 또한 긴급조치 위반이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변론을 하던 변호사도 그 변론 때문에 구속당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그곳에 민주주의가 살해당하면서 흘린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갖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하여 본 피고인은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본 피고인은 판결문을 받아보았을 때 참으로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려 7회에 걸쳐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내용과 거의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피고인이 그토록 진지하게 임했던 재판의 전과정이 단지 예정된 판결을 그럴듯하게 장식해주기 위해 치루어진 무가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판결이유」의 ‘범죄사실’ 제 1 항 중 “ㆍㆍㆍㆍㆍㆍ임신현이ㆍㆍㆍㆍㆍ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 유시민은 성명불상 학생들에게 위 임신현의 신분을 확인ㆍ조사토록 하고ㆍㆍㆍ”라는 부분은 형식논리상으로조차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본 피고인에게 지시를 받은 학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어떻게 그가 성명불상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본 피고인이 한번도 이를 시인한 바 없으며, 백수택군 등 여러학생들의 진술은 물론이요, 임신현 자신의 법정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본 피고인이 임신현이 연행 구타되던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본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는 일이 어찌 증명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본 피고인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범죄사실’ 제 2 항 중 “ㆍㆍㆍㆍㆍ위 김도인은 피고인 백태웅과 피고인 유시민 앞에서ㆍㆍㆍㆍㆍ 구타하여 동인(손형구를 말함)에게 전치 3주간의ㆍㆍㆍㆍㆍ다발성 좌상을 가한ㆍㆍㆍㆍㆍ” 부분 역시, “백태웅과 유시민에게 조사받는 동안 한번도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한 손형구 자신의 법정진술에조차 모순됩니다. 그리고 ‘범죄사실’ 제 3 항 중 “피고인 유시민은ㆍㆍㆍㆍㆍ동일(9월 26일을 말함) 21:00경부터 익일 01:00까지 피고인 윤호중, 같은 오재영 및 백기영, 남승우, 오승중, 안승윤 등과 같이ㆍㆍㆍㆍㆍ(정용범을)ㆍㆍㆍㆍㆍ계속 조사하기로 결의하고ㆍㆍㆍㆍㆍ” 및 ‘범죄사실’ 제 4 항 중 이와 유사한 대목 역시, 본 피고인이 당시 진행중이던 총학생회장 선거관리 및 학생회칙의 문제점에 관해 선거관리 위원들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사실을 왜곡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는 오승중, 김도형 등의 진술에 의해서도 명백히 밝혀진 일입니다.


이 몇 가지 예는 특히 현저하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며 판결문 전체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이는 사건 전체가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지휘 아래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기실 판결문의 내용 중 대부분이 침소봉대ㆍ견강부회ㆍ날조왜곡된 지난해 10월 4일 경찰발표문을 원전(原典)으로 삼아 구속영장ㆍ공소장을 거쳐 토씨하나 바꾸어지지 않은 그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1심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적 향상에 기여해야 할 사법부의 사회적 의무를 송두리째 방기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이 이처럼 1심판결의 부당성을 구태여 지적한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이유에 의한 유죄선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항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78년 2월 하순,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본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그 길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좋은 옷, 맛난 음식을 평생토록 외면해 오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님을 확신했으므로)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하신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언제나 달콤하기만 했으며,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설레던 미래는 오로지 장밋빛 희망 속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카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 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 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 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입구 전망대 아래에 교내 상주하던 전투 경찰들이 날마다 야구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만 하얗게 벗겨져 있던 잔디밭의 흉한 모습은 생각날 적마다 저릿해지는 가슴속 묵은 상처로 자리잡았습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다 ‘문제 학생’이 될 조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않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해 여름 본 피고인은 경제학과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드디어 문제 학생임을 학교 당국 및 수사 기관으로부터 공인받았고 시위가 있을 때면 앞장서서 돌멩이를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점증하는 민중의 반독재 투쟁에 겁먹은 유신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해 버린 10ㆍ26정변 이후에는, 악몽 같았던 2년간의 유신 치하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자 총학생회 부활 운동에 참여하여 1980년 3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봄의 투쟁이 좌절된 5월 17일, 본 피고인은 갑작스러이 구속 학생이 되었고, ‘교수와 신부를 때려준 일’을 자랑삼는 대통령 경호실 소속 헌병들과, 후일 부산에서 ‘김근조 씨 고문 살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치안 본부 특수 수사관들로부터 두 달 동안의 모진 시달림을 받은 다음, 김대중 씨가 각 대학 학생회장에게 자금을 나누어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 석 달 만에 영문도 모른 채 군법 회의 공소 기각 결정으로 석방되었지만, 며칠 후에 신체 검사를 받자마자 불과 40시간 만에 변칙 입대당함으로써 이번에는 ‘강집 학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영 전야에 낯선 고장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이면서 본 피고인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요 치욕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제대하던 날까지 32개월 하루동안 본 피고인은 ‘특변자(특수 학적 변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늘 감시의 대상으로서 최전방 말단 소총 중대의 소총수를 제외한 일체의 보직으로부터 차단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과 비정하게 산허리를 갈라지른 철책과 밤하늘의 별만을 벗삼는 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인 그해 저물녘, 당시 이등병이던 본 피고인은 대학시절 벗들이 관계한 유인물 사건에 연루되어 1개월 동안 서울 보안사 분실과 지역 보안 부대를 전전하고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한 상세한 재조사를 받은 끝에 자신의 사상이 좌경되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쓴 다음에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그런데 제대 불과 두 달 앞둔 1983년 3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녹화 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 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이 수백 특변자들에게 가해진 것입니다.


당시 현역 군인이던 본 피고인은 보안 부대의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의 폭력 탄압에 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지내던 본 피고인에게 삶과 투쟁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되살려준 것은 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징집당한 학우들 중 6명이 녹화 사업과 관련하여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순결한 양심의 선포 앞에서 본 피고인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넋에 대한 모욕인 탓입니다. 그래서 1983년 12월의 제적 학생 복교 조치를 계기로 본 피고인은 벗들과 함께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야수적인 강제 징집 및 녹화 사업의 폐지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복교하지 않은 채 투쟁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정권은 녹화 사업의 존재, 아니, 강제 징집의 존재마저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복교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은전을 정치적 선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극소수 좌경 과격 제적 학생들’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어용 언론을 동원한 대규모 선전 공세를 펼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여러가지 사정으로 복학하게 되었을 때 본 피고인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복학생 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 사건으로 다시금 제적 학생 겸 구속 학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 피고인의 이름은 ‘폭력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 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의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폭력 과격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을씨년스러운 법정 한 귀퉁이에서, 기다란 구치소의 담장 아래서 눈물짓고 계신다는 단 하나 가슴 아픈 일을 제외하면 몸은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지만 본 피고인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DA 300



오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재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 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 시 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 [출처: 중앙일보] 판사들도 돌려봤다는 26살 유시민이 쓴 항소이유서 전문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지음

생각의 길, 2015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국내도서
저자 : 유시민
출판 : 생각의길 2015.04.10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 스탠바이 – 023p.

퍼즐이나 알고리즘 문제를 풀 때, 심지어 회사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이런 파괴와 창조는 유용하다. 미국에서는 보통 이런 걸 ‘상자 밖에서(out of box)’ 생각한다고 표현한다. 자기 머리가 유연하지 않다는 생각, ‘나는 왜 이런 문제를 풀지 못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자기가 올해 읽은 시집이 몇 권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아니, 시집의 권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읽은 시가 몇 편인지 따져보아도 답이 나올 것이다.

상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상상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상상을 하는 힘을 의미하는 상상력은 숨쉬고 밥을 먹으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매일 헬스클럽에 다니는 사람의 배에 초콜렛 복근이 생기는 것처럼, 매일 시를 읽는 사람의 뇌에는 상상을 위한 복근이 생긴다. 시를 읽자. 심지어 좋은 시가 담아내는 고도의 추상은 객체지향이나 함수 패러다임이 포착하는 고도의 추상과 맥을 같이 한다. 매일 코드만 들여다보는 사람의 머리는 2차원이지만, 코딩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읽는 사람의 머리는 3차원이다.

- 책에 심어놓은 5개의 뉭앙스 이야기 : http://www.snujn.com/news/18286



# 컴퓨터공학과의 인기 – 33-35p.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우리가 상자를 여는 순간 삶과 죽음이 결정되지만, SI의 늪에서 고생하는 개발자 다수의 삶은 우리가 보지 않아도 존재한다. 무지막지한 하청구조의 결과로 육체적 생명을 담보잡힌 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관찰자의 유무와 상관없이 저기, 언제나 존재한다. 그들은 매일 마감일에 쫓기고, 야근에 시달리고, 박봉에 피눈물을 흘리고, 병원으로 실려가고, 학원 출신이라는 경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판교의 개발자들이 노트북을 챙겨들고 커피전문점에서 코딩과 SNS를 즐기는 동안, SI 개발자들은 개발이라는 노동을 하며 시들어간다.

이러한 양극화가 심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판교의 개발자들이 꽃이면, SI개발자들은 흙이다. 흙이 비옥하지 않으면 꽃이 필 수 없다. 흙 없이 존재하는 꽃은 생명이 아니라 뿌리가 잘린 장식물에 불과하다. 수적으로 비교해도 그렇다. SI 개발자가 다수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학생들 다수가 장차 취직을 하게 되는 곳은 판교가 아니라 SI라는 뜻이다. 따라서 SI 시장이 규제와 혁신을 통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지금 불고 있는 컴퓨터공학과의 인기는 오래 갈 수 없다.

(중략)

미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기본적으로 ‘좋은’ 직업으로 인식된다. 평균보다 높은 연봉, 좋은 복지, 유연한 근무 시간, 쉬운 이직.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이름도 없고 작지만 훌륭한 회사가 즐비하다.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원하는 프로젝트를 고를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연봉을 많이 받는 회사와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회사의 차이, 즐겁고 활기찬 회사와 느리고 지루한 회사의 차이는 있지만, 야근과 박봉에 시달리는 곳은 없다. 높낮이의 굴곡은 있을지언정 평균이 튼튼하고 강하다. 한국의 IT 시장이 지향해야 할 목표 지점도 이런 곳이어야 한다. 엘리트 개발자만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나머지는 고통받는 현실은 경쟁력을 갖추기도 어렵고 지속되기도 어렵다.



# 빅데이터와 스몰데이터 – 159p.

불변, 고계 함수, 커링 등 함수 패러다임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은 객체지향 패러다임을 사용하는 개발자에게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테고리 이론, 펑터, 모노이드, 모나드와 같은 괴상한 이름이 등장하면서 아직 함수 패러다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기를 눌리게 만든다. 그래서 실제로 미국에 있는 함수 개발자 중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상대방이 모른다는 이유로 사실 자기도 모르는 걸 함부로 떠들지 말자.

자기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면서 함부로 어려운 용어를 들먹이면서 함수 언어에 대한 진입장벽을 세우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 업계에서는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이 많다. 빅데이터나 머신러닝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카테고리 이론이 잘난척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의 치기 때문에 언급된다고 하면,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은 기술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는 세일즈맨이나 언론에 의해서 의미가 확장되고 왜곡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단어 주변에 설탕과 밀가루가 잔뜩 묻은 채 부풀려져서 실제 의미에 접근하려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다.



# 머신러닝이란 – 167-168p.

영어에 ‘A on steroid’라는 표현이 있다. A는 A인데 그것이 스테로이드라는 약물을 복용했기 때문에 원래 A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 되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서 스칼라 언어에 있는 패턴매치를 설명할 때 ‘Java switch on steroid’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 자바에서 사용하는 스위치 구문과 비슷한데, 훨신 풍부하고 강력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머신러닝은 일종의 ‘알고리즘 on steroid’다. 흔히 하는 말로 약빤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기 때문에 API만 있으면 코드 내부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약을 빨아들였기 때문에 기존 알고리즘보다 훨씬 강력하다.

기존 알고리즘에 비해서 강력해진 부분은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동적이고,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되어 나간다는 점이다. 기존의 알고리즘은 한번 작성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나중에 다시 코드를 수정해서 개선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알고리즘 자체가 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경우, 알고리즘은 그대로 있지만 알고리즘에게 적용되는 모델이 변한다. 모델은 수의 집합이다. 벡터로 불러도 좋고, 행렬이라고 불러도 좋다.




# NLP연구의 기초자산 – 말뭉치 – 186-187p.

요즘은 오픈소스와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이라고 해도 NLP에 대한 연구를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말뭉치의 경우 방대한 양의 텍스트에 대해 수작업으로 주석을 달아줘야 하는 관계로 개인이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는 공개된 한글 말뭉치가 적은 것이 한글을 이용한 NLP 연구가 뒤쳐지게 되는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말뭉치가 공개되어 있으며, 위키피디아의 데이터를 이용한 명사 말뭉치도 꾸준하게 업데이트되어 공개되어 많은 NLP 연구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한다.

국내에 공개된 대표적인 한글 말뭉치로는 국립국어원에서 21세기 세종계획의 성과물로 내놓은 말뭉치가 있는데,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는 대신 학술 목적의 이용을 약속하면 CD 형태로 송부해준다. 문제는 이 말뭉치의 내부에 깨진 문자가 다수 존재한다든지 주석이나 태깅에 오류가 있다. 그래서 NLP 연구자가 사용하기엔 적지 않은 수고를 들여 수정해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하루빨리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여 문제점을 보완해 깃허브와 같이 일반인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개발자와 알고리즘 – 214-215p.

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50622080223

대학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특정한 API를 다루는 ‘코딩’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규칙을 이해하고 (혹은 규칙을 정의하고!) 해당 규칙을 단계별로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코딩이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코딩이라는 것은 (우리가 앞에서 정의한 넓은 범위에서의) 알고리즘이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즉, 코딩은 외공이고 알고리즘은 내공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단편적인 코딩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즉 알고리즘을 길러줘야 한다. 코딩은 살에 새긴 문신과 같다. 내 몸의 일부지만 지우거나 덧칠할 수 있는 표면적인 존재다. 대학에서 배우지 않더라도 훗날 MOOC, 학원, 스터디그룹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뼈에 녹아서 나와 한 몸이 되는 알고리즘은 나와 분리할 수 없다. 그 자체로 내 프로그래밍 능력, 프로그래머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화학적 구성물이다. 그래서 알고리즘은 배워야 하는 시기가 따로 있다. 시기를 놓치면 제대로 익히기 어렵다.


요즘처럼 기술 변화의 속도가 바른 시대에는 특정 기술, 플랫폼, 언어, API에 종속되는 코딩 기술의 가치가 전보다는 크지 않다. 오히려 낡은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전투기의 생명이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는 기동성(maneuverability)에 달려 있는 것처럼, 현대 프로그래머의 생명도 방향 전환 능력에 달려 있다. 알고리즘은 그런 방향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메타 능력’이다.


그래서 미국의 IT 회사들은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특정 기술이나 API에 정통한 사람을 찾지 않는다. 기본적인 능력, 즉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앞에서 황금열쇠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런 능력을 의미하는 것임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기술은 이렇게 알고리즘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져 잇다. 그리고 알고리즘이라는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DNA는 논리다. 일반적으로 논리적인 사람은 좋은 코드를 작성하지만, 논리적 사고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코딩’을 배워도 좋은 코드를 작성하지 못한다.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 가보자.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알고리즘을 꼭 알아야 하는가?”

“개발자에게 알고리즘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다.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알고리즘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개발자에게 알고리즘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답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알고리즘이라는 메타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알고리즘이라는 능력 없이 프로그래밍을 하려는 것은 한 수 이상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에 뜨지 못하는 사람이 수영을 하려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은 알고리즘이다.



# 알고리즘은 개인기다 – 226p.

개발자에게 알고리즘은 축구선수에게 있어서 개인기와 같다. 개인기만 앞세우는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는 어렵지만, 세계적인 선수 중에서 개인기가 부족한 사람은 없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 때 호날두나 긱스 같은 선수와 비교해서 개인기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비판을 받았는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의 개인기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훌륭한 회사에서, 훌륭한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과시하며 코딩에 열중할 수 있으려면 알고리즘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제 해결 능력이 필수라는 뜻이다.

book.algospot.com



# 페이스북 개발자 해외 취업 그룹 – 284-285p.

http://www.moreagile.net/2014/08/it.html 

영어 공부의 다섯 가지 원칙

1. 사운드 퍼스트의 원칙 (Sound First) 

먼저 귀가 뚤려야 한다. 이해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우선 말로서 들릴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뇌는 소리에 대해서 필터링을 적용하여 언어와 그 외의 소리(노이즈)로 구분하여 처리하는데, 외국어에 대해서는 언어가 아닌 노이즈로 인식을 하게 된다. 귀를 뚫는데 있어서 저자가 제시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원어민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소리를 낼 수 있게 발음과 억양을 연습하는것이 맨 처음 이뤄져야 한다. 영어에 사용되는 음을 머저 이해하지 않으면 듣기도 읽기도 잘 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음’에 대한 감을 단련해 두자. 


2. 다이렉트 이해의 원칙 (Direct Understanding)

영어를 번역해서 생각하지말고 영어 그대로 이해한다. 영어는 한국어로 1대1 번역이 불가능하다.


3. 스피킹중심의 원칙(Speaking Centered)

네이티브의 발음과 억양을 흉내내어 음독하는것은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기 위한 초필살기이다. 단, 한국식 발음으로는 해 봤자 아무소용 없다. 반드시 네이티브의 발음을 최대한 흉내낼것!

음독시에는 스마트폰의 녹음기 기능등을 이용해 자신의 발음을 체크해보라.


4. 문맥이해의 원칙 (Contextual Experienced)

자잘한 단어나 문법이 아닌 전체적인 문맥으로서 대량의 문장을 이해하라. 단어도, 표현도 그 상황 안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같은 상황에서 몇번이고 같은 표현을 마주함으로서 그 의미가 자연히 통하게 된다. 단어나 문법을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실생활의 영어를 대량으로 접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진다. 


5. 선택과 집중의 원칙(Choice and Focus)

영어는 크게 미국식과 영국식이 있어 어느쪽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자신이 주로 사용하고 싶은 쪽으로 타겟팅을 해서 그쪽 분야의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예를들면 저자는 애자일 개발이라는 분야를 목표로 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 기획에서 테스트까지 – 322p.

www.quora.com에서 개발자들 사이에 마세라티 문제(https://www.quora.com/Whats-a-Maserati-Problem)가 논쟁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 슈퍼카인 마세라티를 사기도 전에 마세라티를 사고 나서 생겨나는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발에 있어서도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단순한 쇼핑몰과 웹 호스팅을 만들면 될 것을, 많은 개발자를 투입해 그보다 못한 서비스를 큰 비용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켓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성공할 타이밍을 놓칠 뿐만 아니라, 개발에 따른 스트레스도 날로 커진다. 장기간 개발의 끝에서 실패를 만난다. 전통적인 폭포수 모델이 이러하다.



# PC방 알바 – 373p.

냉정하게 보았을 때 김종민 게스트는 운이 좋았다. 타고난 재능과 멈추지 않는 노력이 밑바탕이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건 <청년의 방>에 등장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인간으로서, 물리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지옥이다. PC방 알바 시절의 김종민 게스트는 알지 못했겠지만 그의 재능과 (이후에 펼쳐지는) 노력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운 좋게도) 전 세계적으로 수요와 혁신이 풍부하게 넘쳐 흐르는 시장을 향했다.

지연이나 학연으로 똘똘 뭉치는 패거리문화가 만연한 나라에서, 고졸이면 대통령도 무시하는 나라에서 김종민 게스트는 그런 천박한 문화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시장을 자신의 무대로 선택했다. 그게 운이다. 10년 전에 부산의 한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고등학생에게 컵라면을 가져다주고, PC를 수리하고, 게임을 설치하던 김종민 게스트를 상상하면서 지금 이 순간 전국의 모든 PC방에서, 편의점에서, 주유소에서, 주차장에서, 삶은 모든 현장 구석구석에서 치열하게 방황하고 있는 젊음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내가 나중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이 멈추지 않고 떠오르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끔찍한 지옥이라도 그 마지막 생명줄을 놓지 않기 바란다. PC방에서 정상급 개발자로 발돋움한 김종민 게스트의 이야기는 예외적인 신화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일이다. 끝까지 생명줄을 놓지 않는 진지함과, 장인이 되고자 하는 어린 시절의 꿈을 망각하지 않은 일관성과, 뭐든 시작하면 성취를 이루고야 마는 집중력이 낳은 평범한 성공이다.


http://cmiscm.com/#/aboutme/



# 상경, 그리고 공부 – 377-378p.

프로그래머에게 실력의 궁극은 창조다. 반드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나 플랫폼을 창조할 필요는 없다. 잘 알려진 오픈소스나 깃허브 코드일 필요도 없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서, 혹은 자기가 수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원래 의도한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는 코드를 만들면 그게 창조다. 그게 제일 중요하고, 제일 기본이다. 그래서 회사와 같은 현장에서는 실제로 사용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한 최초의 창시자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다른 개발자를 리드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합류하는 프로그래머의 코딩 실력이 더 윗길인 경우도 있지만, 창시자의 철학과 비전은 실력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존중을 받는다.



# 개발자의 연봉 – 417p.

그들은 왜 구글이라는 엄청난 브랜드를 포기하고 뉴욕의 이름없는 스타트업 회사로 자리를 옮겼을까? 임팩트 때문이다. 자기가 짠 코드가 세상에 어떤 임팩트, 즉 어떤 영향을 주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작업을 수행하는 개발자는 구글에 많이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소수다. 상당히 많은 구글 개발자가 거대한 조직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코드를 만들며 속상해한다. 다른 그룹의 개발자와 객체의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논쟁하며 하루를 보내고 허무한 심정으로 퇴근을 한다. 그런 개발자들은 회사의 브랜드를 포기하더라도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프로젝트에서 일하기 위해 다른 회사를 선택한다. 연봉 수준이 유지된다는 조건은 물론 기본이다.

이걸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입해보자. 삼성전자에 다니는 개발자 중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거대한 조직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코드를 만들며 좌절하고, 매일 의미없는 논쟁을 되풀이하며 지쳐간다. 그에겐 세상에 커다란 임팩트를 주는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이있다. 그러던 그의 눈에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발견되었다. 인포섹이라는 작은 중소업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자, 그가 삼성을 떠나서 인포섹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1억 연봉을 받다가 2,000만 원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래, 하는 일은 재미없어도 1억을 받잖아. 버티자. 업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이건 동맥경화다. 흐르지 않는 물이다. 개발자 연봉의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은 이런식으로 업계 전체를 서서히 마비시킨다.




<팟캐스트 나는 프로그래머다 2탄>

임백준, 정도헌

한빛미디어, 2016



팟캐스트 나는 프로그래머다 2탄
국내도서
저자 : 임백준,정도현
출판 : 한빛미디어 2016.07.01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 보안전문가의 보안범죄 - 031-033p.

객체지향, 리팩토링, NoSQL 등의 분야에서 잘 알려진 마틴 파울러(Martin Fowler)는 프로그래머의 윤리와 관련된 강연을 여러 차례 수행했다. 2010년 QCon 런던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윤리 the ethics of software development'라는 제목으로, GOTO 2014 행사에서는 '그저 코드 몽키인 것은 아니야 Not Just Code Monkeys'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러한 강연을 통해서 그가 전한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고객이 도덕적으로, 혹은 심지어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요청을 해올 때 프로그래머는 그것을 구현해야 하는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묶어서 파울러는 '다크 패턴(dark patterns)'이라고 불렀다. 겉에 보이는 링크와 실제로 도달하는 URL을 다르게 만든다든지,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광고를 누르도록 만든다든지, 스파이웨어를 몰래 설치하는 것 등이 모두 다크 패턴의 사례다. 예컨대 악성 코드를 설치하기 위해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안내문자를 무작위로 뿌리는 것은 악질적인 다크 패턴이다. 파울러는 진정한 프로그래머라면 그런 요청을 단호하게 뿌리쳐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중략)

내가 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간단하지 않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질문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는 세상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는 윤리적 힘은 저절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샤오헤이의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 10억 원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그렇게 많지 않은 세상이다. 맨홀 뚜껑이 땅으로 꺼져서 속수무책으로 사고를 당한 사람들처럼, 다크 패턴의 유혹에 바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나만큼은 윤리적이라고 자신하지 말자.




# 전자정부 프레임워크의 족쇄 - 39-40p.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보다 '프레임워크'에 집중하는 타입의 개발자가 있다. 초보자보다는 중급 개발자 중에 이런 사람이 많은데, 스스로 고급 개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코드의 확장성이나 재사용성에 대한 어설픈 이해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구현해야 하는 비즈니스 요구사항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모든 프레임워크는 시간이 지나면 족쇄로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프레임워크'보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프레임워크가 더 좋다. 내가 최근에 번역한 『브루스 테이트의 세븐 랭귀지』 (한빛미디어, 2015)의 저자인 브루스 테이트는 2004년에 이미 프레임워크의 족쇄에 갇힌 자바 언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가 2004년에 출간한 『더 낫고, 빠르고, 가벼운 자바 Better, Faster, Lighter Java』라는 책은 프레임워크에 갇힌 자바를 이렇게 소개했다. 2004년의 이야기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해법이 최선이다. 악순환의 늪에 빠진 자바의 복잡성에 길들여진 엔터프라이즈 자바 개발자들은 간단한 방법이 있을 때조차 지나치게 복잡한 해결책을 선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웹로직, 제이보스, 웹스피어와 같은 '헤비급' 자바 기반 아키텍처를 이용해서 서버를 구축하는 것은 많은 비용을 발생시키고 번거롭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선택된 프레임워크를 지원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면, 무언가 단순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아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전자정부프레임워크는 브루스 테이트가 비판하는 2004년의 기업용 프레임워크보다 더 나쁘다. 헤비급 아키텍처는 비록 비싸고 번거로운 단점이 있더라도 시장에서 타제품과 경쟁을 하며 기능을 향상시킬 수 밖에 없었다. 개발자들이 여러 제품 사이에서 최선을 찾기 위해서 노력할 공간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전자정부프레임워크는 삼성, LG, SK 등 지정 과정에 참여한 소수 SI 업체의 이익을 반영할 뿐, 그 안에서 개발자들이 숨 쉴 공간이 없다.




#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 - 108p.

거듭 이야기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 언어의 '문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문법도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언어를 둘러싼 철학과 패러다임, 생태계, 도구, 그리고 라이브러리를 두루두루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배울 언어를 선택할 때는 새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 한 번 선택했으면 한눈을 팔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아무 망설임 없이 온몸을 던져서 할 때 결실을 맺는 법이다.



# '빌드'로 보여준 존재감 - 210p.

MS는 그 동안 적으로 삼았던 리눅스와 리눅스 가상화 컨테이너 기술인 도커를 자사 클라우드인 애저에서 지원했으며, 안드로이드에 오피스와 안드로이드를 위한 개발 환경까지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겠다는 변화된 모습과 개방성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개발자들의 마음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원하는 것은 유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에게 있다. 요 몇 년 전까지 구글이 개발자들을 열광시켰고, 이 바통을 이어받아 페이스북이 힙스터의 면모를 보여줬다.

최초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만든 장수 기업인 MS는 천천히 준비했고 모바일과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개발자를 위한 모든 것을 선사했다.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로 화석이라 조롱받았던 MS는 깨어나 이렇게 멋지게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다.



# 데이터센터 vs 클라우드 - 226-227p.

DevOps는 개발(Development)과 운영(Operations)을 합성해서 만들어낸 신조어로 개발, 빌드, 배포, 테스트를 하나의 사이클로 만들어 끊임없이 반복하는 개발 프로세스와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툴링을 총칭하는 하나의 개발 패러다임이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DevOps는 두 가지 접점을 가진다. 한 가지는 클라우드 컴퓨팅에서는 스케일 아웃이나 스케일 업에 대응하기 위해 인프라 구성 작업이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이러한 구성 작업이 단순한 설정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버 애플리케이션의 릴리스에 따른 애플리케이션 버전 관리,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그리고 이를 테스트하기 위한 버전별 자동화 테스트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일련의 작업들이 자동화되어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클라우드 컴퓨팅에서의 DevOps는 서비스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생산성과 유연성 그리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 핀테크, 메가 트렌드인가 버즈워드인가? 

- 242p.

"그들이 우리 점심을 빼앗아 먹으려 하고 있다. They all want to eat our lunch"

여기에서 '그들'은 실리콘밸리고 '우리'는 월스트리트다. 그(제이미 다이먼)의 말은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하는 핀테크 스타트업 회사들에 대한 기존 금융기관의 공포와 우려를 대변하는 말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회사들이 핀테크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두려움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핀테크가 몰고 오고 있는 변화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님을 깨달은 미국의 기존 금융기관들은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과 제휴하거나 자본을 대는 방식으로 공생을 꾀하고 있다. 비트코인 지갑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코인베이스(Coinbase)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뉴욕증권거래소가 대표적이다.


- 249p.

의구심, 상상력, 소프트웨어 기술은 핀테크라는 나무를 떠받치는 세 개의 줄기다. 의문이 떠올랐을 때 각종 규제와 현실의 벽을 생각하고 움츠러들면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의문으로 끝나기 때문에 육화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일단 의심해서 싹을 틔웠으면 온 힘을 다해 상상해야 한다. 이때도 현실의 벽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상상을 하는 동안 생각의 속도로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정확하게 소프트웨어를 구현할 수 있는 끼와 재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핀테크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제나 현실적 규제, 법적 장치, 대형 은행의 이익, 이런 부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답답하고 지루하다. 핀테크를 생각하는 사람은 상상의 범위를 우리나라로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 핀테크의 '비즈니스'적인 요소는 특정 나라의 법적 규제를 받을지 몰라도 '기술적'인 요소는 그런 구속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술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상상에는 국경이 없다.



# 국세청 홈택스, 국가 프로젝트의 단면 268-270p.

임작가: 홈택스? 그게 뭐에요

데니스: 세무 관련 사이트를 통합한 겁니다. 문제는 액티브X 8개를 사이트에 모아놨는데요. 8개를 하나의 심플한 액티브X를 만든 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이 덕지덕지 붙은 괴물이 나왔죠.

임작가: 홈택스라는 게 일반 시민들이 세금 정산할 때 사용하는 사이트라는 거죠?

데니스: 네, 그 때문에 세금을 못 낸 사람도 있고, 에러가 나서 해외에서 접속을 못한 사람도 있구요, 맥에서 버추얼박스나 패러럴즈에서 사용하는 유저들도 사용에 불편을 겪었죠. 이번에 워낙 에러가 많으니 홈페이지 메인에 전화문의 말고 메일로만 접수해달라는 공지가 있었죠.

임작가: 그럼 안 보겠단 얘기잖아 ㅋㅋㅋ

데니스: 네 그래서 지금 정부의 세금, 세무 관련 분들이 분노 폭발 직전이죠.

임작가: 누가 만든 거에요 그 사이트는?

데니스: 그 유명한 임작가 님 출신의 그 회사 모 회사.

임작가: 진짜요? 그?

데니스: 다음 이슈는 뭐냐면요 분기마감 등 이럴 때 딱 나올 거예요. 세금대란. 홈택스 문제 있다. 안정화 아직도 못하고 있어요 제대로... 어떤 경우가 있냐면요,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는데 상대가 받지 못하는 거예요.

임작가: 야... 이거는 창피하다.

데니스: 그렇죠... 창피한 이슈죠. 발코딩이 이슈가 아니예요 이건...

임작가: 아니... 대한민국 최고기업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중요한 웹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요.

데니스: 우간다에서도 이런 일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발생했습니다.

(중략)

국세청에서 개발한 국세 관련 프로그램은 2015년 2분기부터 대혼란을 일으켰다. 기존 프로그램을 단순하게 하나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액티브X를 설치하고 웹 브라우저의 보안 레벨도 극도로 낮춰야 동작하는 등, 보안적인 면에서 좋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었다. 

심지어 홈택스는 SSL에 대해서 웹 브라우저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보안경고가 2015년 9월 말 현재까지 발생하고 있다. 보안 취약점 문제로 이미 MS가 사용을 금지한 액티브X 기반의 보안 프로그램을 덕지덕지 올려 국민 PC의 안정성을 해치는 국세청 프로그램의 문제를 용납하기 힘들다.

http://www.etnews.com/20150224000210



# 여자 개발자라는 블루오션 

- 340-342p.

전수현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놀란 부분이 여기다. 6개월 동안 혼자 마음을 앓다가 퇴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배려로 알고 있더란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차별이었던 것을 남성들은 자기 입장에서 배려로 생각한 것이다. 엄청난 착각이다. 생각하는 바가 화성과 금성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이런 인식의 거리가 한 사회가 열려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에 해당한다. 나도 한국에서 생활했으면 이런 착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성차별에는 '임신'에 대한 차별이 포함되어 있다. 나이에 따른 차별을 이야기할 때 차별받는 입장에 속하는 나이는 대략 40세를 전후로 한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면접을 진행할 때 위에서 언급한 종류의 내용, 즉 인종, 신념, 피부색, 나이, 성별, 종교, 출신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예 언급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만약 그런 내용이 농담으로라도 발설되고, 피면접인이 그러한 발언 때문에 불쾌하거나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면, 그것은 즉각적인 소송감이며 회사는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 회사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직원들 교육에 정성을 들인다. 하지만 이런 차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행동은 교육 이전에 시민의식과 상식의 문제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정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실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조금만 껍질을 벗기면 흑백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라다. 이슬람 종교와 테러리스트를 연결 짓거나 대통령 후보에게 성경을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믿느냐고 질문하는 식의 종교적 차별도 존재하고, 나이에 대한 차별도 실제로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직장에서 이와 같은 차별에 대한 속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349p.

여자들이 남자들의 영역, 즉 야근이나 맹목적인 충성 같은 부분에서 남자들에게 뒤처질 거라고 생각해서 채용을 꺼리는 것은 편협하다. 여자들도 그런 일을 남자만큼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남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것, 그런 관념의 틀 자체를 깨야 한다는 말이다. 여자가 왜 남자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여자는 여자의 영역이 있고, 기업의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여자의 영역과 남자의 영역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건 심지어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여성 인구가 100명이고 남성 인구도 100이라고 가정하자. 여자 100명 중에서 10명이 개발자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남자 중에서도 10이 개발자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전 사회적으로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는 사람의 수는 20명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컴푸터 프로그래머의 수가 20명이라고 하자. 남녀 구별 없이 실력과 재능에 따라서 채용을 하면 20명의 자리를 모두 재능 있는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결과를 취소한다면 적어도 10명의 자리는 재능이 없는 남자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최선이 아니다.



# 개발자와 영어, 뜨거운 애증관계에 대하여 - 373-375p.

듣기는 외국 생활 '짬밥'에 정비례한다. 외국에서 살면 들리는 것이 영어이기 때문에 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영어듣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직 영어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내 말을 믿기 바란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나도 회사에서 보라는 토익시험을 보면 점수가 바닥을 기었지만 막상 미국에 건너가 수업을 따라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사람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듣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물론 "휘리리톡" 같은 것은 예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영어로 된 뉴스나 방송, 혹은 프로그래밍 관련 팟캐스트 같은 것을 열심히 들으면 영어듣기 능력을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듣기는 그야말로 듣는 양에 정비례 한다. 장소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말하기는 조금 다르다. 듣기가 짬밥이라면 말하기는 상황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자신을 밀어넣어야만 말하기 능력이 늘 수 있다는 뜻이다. 공부라는 차원이 아니다. 말하기는 생활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늘기 어렵다. 미국에서 나보다 오래 생활한 한국인을 만났을 때 영어말하기 능력이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랑 다르지 않아서 놀라는 경우가 있다. 한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거나 연구소에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대개 그렇다. 말을 할 일이 없으니 말하기 능력이 달라지지 않는다. 1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중략)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기 바란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평균적인 수준으로 영어를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해외에 나가서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영어라는 그릇에 담는 내용물이다. 개발자 영어라 했을 때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영어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뜻이다.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형식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래야 진짜다.



# SI 이노베이션은 개발자 처우 개선부터 - 403p.

속담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이 조직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쿠텐) 홍보를 좀 하자면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회사로 인력이 이동하다 보면 좋은 업체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겠죠. 그리고 해외 이직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국내에서만 찾으려 하지 마시고 해외로 조금만 눈을 돌려보시면 얼마든지 좋은 조건에 일하실 수 있는 기업들이 있으니 꼭 한 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팟캐스트 나는 프로그래머다>

임백준, 정도현, 김호광 지음

한빛미디어, 2015


팟캐스트 나는 프로그래머다
국내도서
저자 : 임백준,정도현,김호광
출판 : 한빛미디어 2015.11.01
상세보기




명절은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곳에 어머니 혼자 남겨두고 나온것이 못내 걸렸지만

그래도 내가 없는 것이 더 나을것이라 위로했다.


... (중략)


생각이 짧았다.

어머니 혼자두고 면피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 (중략)


잊지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미생 14국>

연출 김원석, 극본 정윤정, 원작 윤태호

tvN, November 20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