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어느 위대한 철학자는 "밀크 스프와 편안한 잠자리, 거기에 육체적인 고통이 없을 것. 그것도 과하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거기에 더 부연을 한다. 마른 의복, 믿을 수 있는 하켄, 맛있고 생기가 돋아나는 느낌을 주는 음료만이 아이거 북벽에서의 최대 행복이라 하겠다. 진정으로 우리는 행복했다. - 64p.



우리들은 때때로 행복을 체험한다. 그때는 그 행복이 무엇이었던가를 확연히 알지 못한다. 한참 지나고 난 후라야 비로소 그때의 행복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그때 나는 행복하였노라고. 더욱이 지금 우리들의 비박지점에서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거 북벽에서의 이번 비박지는, 그 장소만 가지고 말하면 카스파레크와 나에게는 세 번째의 비박이었으나, 가장 옹색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즐거웠다. 어째서 그렇게 느껴졌을까? 그 이유는 우리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고요와 안온한 마음, 즐거운 정, 그리고 뜻 깊은 만족감에 있었다.

이미 지나간 몇 시간 동안, 만약 우리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낙오가 되거나 단 1초라도 용기를 잃었다면... 만약 한 사람이라도 개인적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본능에서 동지들의 곁을 떠나 혼자 살려는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럴 때 다른 동지들은 아무 소리 안 하고 잠자코 있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동지들과 함께 있을 때의 용솟음치던 유쾌한 기분을 동네로 내려간 자는 느낄 수 없겠지.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렇게, 이 아이거 북벽의 비박지에서 다함께 상쾌한 기분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 111p. 



때는 오후 3시 30분. 1938년 7월 24일의 일이었다. 우리들은 아이거 북벽을 완등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환희의 정? 살았다는 생각? 승리의 도취? 그런 것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방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들의 감각과 심경은 너무나 호된 고행에 시달렸고, 몸은 극도로 피곤해졌기 때문에 여간해선 취한 듯한 감정이 우러나올 여유가 없었다. 카스파레크와 나는 85시간, 헤크마이어와 푀르크는 61시간이나 암벽에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모든 파멸의 구렁에서 벗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우정에는 시종 의지하려는 마음과 신뢰하려는 마음을 그윽히 간직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우리들의 계획에 대한 성공을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 험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상의 열품은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매서웠다. 눈과 입과 코의 언저리는 두꺼운 얼음의 크러스트(Krust)가 매달려서, 마주 쳐다보거나 말을 할 때, 그리고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을 문질러 떼어내야 했다. 어쩌면 북극에서 찾아든 수수께끼의 짐승과도 흡사한 몰골이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이런 꼬락서니를 보고도 우스꽝스럽다고 느낄 감각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더구나 그곳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거나 순수한 기쁨과 행복감이 우러나와 웃어댈 수 있는 장소도 아니며, 그럴 때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들은 묵묵히 악수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 136p.




<하얀거미>

하인리히 하러, 이종호 옮김

에코클럽 발행, 알파인웍스 편집

2017



김훈 작가의 신작 소설 '공터에서'. 김훈 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살아온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시간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실제로 1.4후퇴 때 삼 남매를 데리고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다행히 세 남매 모두 죽지 않고 살았다. 연소득 80달러의 가난한 나라를 살았던 작가가 말한다. 필리핀의 원조를 받아 살던 시대였다고. 폭력과 야만, 억압, 박해, 그리고 차별이 일상이던 그 시대. 비리와 모순의 세계. 가난과 억압의 울분. 그 모든 기억들이 몸속에 딱지처럼 붙어 있다고. 그것이 평생 작가를 괴롭혀 왔고, 그런 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미성숙한 것일 수 있겠다는 느낌. 이것을 빨리 극복하고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소설을 써서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졌고, 덕분에 우리는 김훈 작가의 문장으로 근현대사를 다시 읽는다.


다음 세대인 마장세와 마차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어머니의 아버지의 시간들. 사소한 것들까지 손에 잡힐 듯 상세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복선처럼 의심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한다. 마차세가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는 장면의 묘사에서는 눈길에 사고가 날 것만 같은데 다행히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큰 사건이 날 것 같은 전개의 말미에 큰 사건은 없었다. 우리의 삶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마장세는 고물 처리하는 과정의 비리로 구속되었지만 그저 잔잔한 사건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아들의 시선으로 사망에 이르는 아버지 마동수를 바라보던 떨쳐버리고 싶은 꼬부라진 기억들. 치매에 걸린 어머니 이도순이 죽기 전 꺼내든 초라한 기억들. 그 기억들을 타고 넘는 과거의 상흔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흥남부두에서 젖먹이와 남편을 잃은 어머니 이도순 삶. 일제시대 상해에서 해방 이후 부산에서 전쟁통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던 아버지 마동수의 삶. 


삶의 터전을 떠나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애달픔을 이도순과 마동수의 삶에서 읽었다. 그리고 아직도 남루한 인간의 비애는 우리 삶을 떠돈다.



■ 본문 중에서


# 아버지 - 9p.


외출에서 돌아와서 안방 문을 열었을 때, 마차세는 아버지의 꼬부라진 육신을 보고 죽음을 직감했다. 아버지의 사체는 태아처럼 보였다. 죽은 육신의 적막은 완강했다. 돌이킬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었다.

아, 끝났구나, 끝났어...... 마차세 상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도 그의 한 생애가 끌고 온 사슬이 여전히 길게 이어지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옥죄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차세는 예감했다.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예감은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절박했다.



# 세느주점 - 33p,


시화호에서 새들을 보면서 너를 생각했어. 너의 생명을 흐르는 시간과 나의 생명을 흐르는 시간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만나는 것인지, 섞이는 것인지를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화폭에 그려보려는 생각을 했어. 새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거야.

거기도 새들이 많겠구나. 새를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생각해 줘. 그만 쓸게. 니가 있는 고지에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호수의 새들이 다들 돌아가고 다른 새들이 와 있겠지. 



# 하관(下棺) - 46~47p.


이도순이 아들을 쳐다보았다. 눈동자에 시선의 방향이 없었다. 마차세는 어머니의 눈이 지나간 시간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차세는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이도순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울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울음을 누르려는 울음이 부딪치면서 울음이 뒤틀렸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울음이 몸속에 쟁여진 울음을 끌어냈다. 몸 밖의 울음과 몸 안의 울음이 이어져서 울음은 굽이쳤고, 이음이 끊어질 때 울음은 막혀서 끽끽거렸다. 그 울음은 남편과 사별하는 울음이 아니라, 울음으로써 전 생애를 지워버리려는 울음이었으나 울음에 실려서 생애는 오히려 드러나고 있었다. 몸속에 저렇게 맹렬한 폭발성 에너지가 쌓여서 조용한 일상이 되어왔던 어머니의 생애를 마차세는 짐작할 수 없었다. 돌아누운 이도순의 등뼈가 흔들렸다. 말리거나 달랠 수 있는 울음이 아니었다. 



# 서울 - 104~105p.


아편은 마동수의 목숨에서 시간을 제거시켰다. 약 기운이 돌 때 마동수는 시간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무시간(無時間)의 벌판에 누워 있었고, 약 기운이 풀리면 무릎뼈가 톱으로 썰어내듯 저렸다. 일본이 패전했다는 소식에 중국인들이 거리에서 아우성칠 때도 마동수는 그 무시간의 벌판에 침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일본 패전의 결과로 조선이 독립된다는 것을 마동수는 며칠 후에 알았다.



# 부산 - 114~115p.


서울이 다시 위태로워지자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전선의 일진일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경거망동하지 말고 은인자중하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기자들이 서울 시민은 다시 피난을 가야 하는지를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것은 각자 임의로 결정할 일이고 정부가 간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피난은 명령도 아니고 권유도 아니며, 잔류 또한 명령도 아니고 권유도 아니다, 갈 곳이 있고 갈 힘이 있는 사람은 피난을 가는 것도 무방할 것이며, 서울에 남아 있는 것도 무방하겠지만, 옥쇄주의가 반드시 현명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다만, 피난을 가기로 했다면 날씨가 추우므로 이부자리와 식량을 지참하는 것이 좋겠고, 피난 가는 사람들은 질서를 지켜서 문명한 국민의 성숙도를 우방 여러 나라에 보여달라, 또 피난을 가거나 서울에 잔류하거나 근신자제하고 태연자약하라고 대통령은 당부했다.

계엄사령부 민사부도 대통령 담화에 따른 지침을 발표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은 간선 도로를 군에 양보하고 이면 도로나 논밭 길을 이용해 달라, 피난민들은 부산, 대구 등 대도시로 집중하지 말고 지방 소읍으로 산개하라, 피난 갈 때 두고 가는 김치, 간장, 된장, 메주는 군부대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포장을 해놓고 떠나라, 피난을 가지 않는 가정들은 마당에 방공호를 깊이 파라, 일선과 후방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모든 물자와 언동을 전력(戰力)으로 귀일(歸一)시키라고 계엄사는 말했다.



# 베트남 - 156~157p.


마장세는 구두를 닦아주고 받은 돈으로 거리에서 풀빵이나 꽁치구이를 사 먹었다. 점심때까지 번 돈이 없어서 오후 네댓 시쯤에야 허기를 면하는 날이 많았다. 배가 고프면 창자에서 찬바람이 일었고 몸속이 비어 투명했다. 배가 고프면 눈을 가늘게 뜨게 되는데, 눈꺼풀이 떨려서 세상이 흔들렸고 가까운 것들이 멀어 보였다. 배가 고프면 후각이 민감해져서 거리의 사람 냄새나 물이 오르는 가로수의 풋내가 코끝에 어른거렸다. 배가 고프면 배고픔이 몸속에 가득 차면서도 몸이 비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음식 냄새가 코를 스치면 배고픔은 창끝처럼 뾰족해져서 창자를 찔렀다. 배가 고프면 마음이 비어서 휑했고, 그 빈 마음속에 배고픔이 스며 있었다. 배고픈 저녁에 마장세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배고픔은 노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고프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맛의 헛것이 빈 마음에 번져 있었다. 풀빵은 너무 멀게서 깨물면 속이 흘러내렸다. 마장세는 풀빵을 먹을 때 입을 위로 치켜들고 흘러나오는 내용물을 빨아 먹었다. 풀빵은 멀겠지만 온기가 배 속으로 퍼졌다. 온도도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마장세는 풀빵을 먹으면서 알았다. 온도는 배가 부르지는 않았고 온도가 배 속으로 퍼지면 메마른 창자가 꿈틀거리면서 창자는 더욱 맹렬히 건더기를 요구했다.



# 당신의 손 - 207~208p.


바강희는 아이들이 손바닥으로 느끼는 소나무 껍질의 느낌이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저장되어 있다가 종이 위에서 선이나 색으로 드러나기를 바랐다. 느낌의 내용을 말로 타인에게 전해 줄 수는 없었고 느낌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이 교사의 일이라고 박상희는 생각했다. 박상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토끼, 다람쥐 사육장 앞에 가서 동물들의 손짓, 발짓, 표정과 움직임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박상희는 아이들이 다람쥐와 토끼의 몸놀림에서 생명의 느낌을 얻기를 바랐다. 박상희는 또 유자 껍질, 조개 껍데기, 달걀 껍데기를 교실에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만져보도록 했고, 눈을 감고 서로 얼굴을 더듬어보도록 했다.

ㅡ 선생님은 손으로 만져본 느낌을 그릴 수가 있나요?

라고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물었다.

ㅡ 그릴 수 없어도, 그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라고 박상희는 대답해 주었지만, 전달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박상희는 아이들이 종이나 캔버스에 선을 긋고 물감을 칠할 때 그 종이나 캠버스를 빈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랐으나 그 바람 또한 이해받기는 어려웠다. 어머니들이 박상희의 수업 방식에 항의했다.



# 어머니 - 243p.


이도순이 비척거리면서 서랍을 열어보고 화장실 안을 기웃거렸다. 이도순은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젖먹이 딸을 찾고 있었다. 길녀야 어딨니...... 이도순은 커튼 뒤쪽을 들여다보았다. 마차세는 어머니를 말리지 못했다. 그 아이의 이름이 길녀였구나...... 어머니는 어째서 한평생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그 이름을 말년의 암흑 속에서 기억해 내는 것일까. 어머니의 치매는 망각된 고통의 기억을 극사실적으로 재생시키고 있었다. 길녀는 여자 이름이니까, 길녀가 살았으면 내 누나였겠구나...... 마차세는 길녀가 어머니의 치매속으로 살아 돌아오지 않기를 빌었다. 이도순은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마차세는 고개를 돌렸다.



# 기별 - 270~271p.


임신의 기별은 몸속 깊은 곳에서 움트는 이물감이나 어지럼증 같았다. 기별은 멀고 희미했는데, 점차 다가와서 몸 안에 자리 잡았다. 낯선 것이 다가오고 또 자라서 몸 안에 가득 퍼져가는 과정을 박상희는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몸속의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는 것처럼 단전 아래에서 먼동이 텄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놀러 갔던 동해의 아침 바다는 어둠이 물러서는 시간과 공간 안으로 수평선 쪽에서 솟아오르는 빛의 입자들이 퍼졌고, 새로운 시간은 살아 있는 살끼리 서로 부비듯이 다가왔다. 박상희는 스며서 가득 차는 빛들을 떠올렸다. 임신은 몸의 새벽을 열었다. 가끔씩 안개 같은 것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몸속을 덮은 안개 속에서 해독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수런거리면서 이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발생하지 못한 세포들이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우주공간을 날아가는 별들의 소리 같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어라고 말하고 있었고, 말하고 있었지만 아직 말이 되어지지 않은 소리였다.



# 작가 후기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그 기억과 인상들은 오랫동안 내 속에 서식하면서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싸웠다. 사소한 것들의 싸움을 말리기가 더욱 힘들었다.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마침내 버려지지 않아서 연필을 쥐고 쓸 수밖에 없었다.

당대의 현실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내 선대 인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체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리면서 겨우 글을 이어나갔다.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더 길게 쓰고 싶었지만, 기력이 미치지 못했다. 수다를 떨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였다. 의료비 지출이 늘어났다.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여생의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이다. 



<공터에서>

김훈

해냄출판사, 2017


공터에서
국내도서
저자 : 김훈
출판 : 해냄출판사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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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되어서 유명해진 '살인자의 기억법' 알츠하이머에 걸린 늙은 살인자의 이야기인데, 영화를 본 주변 지인들은 너도나도 추천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관에 갈 시간이 마땅히 나지 않았고, 책으로라도 먼저 만나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저자 김영하 작가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찾아 이 소설의 도입부를 들었다. 작가는 약 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담담히 읽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이 독백을 끝으로 저자의 목소리로 듣는 소설은 끝이 났다. 소설을 내 눈으로 읽는 것과 저자의 목소리로 듣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문장은 간결했다. 김병수와 호흡을 따라 박주태를 의심했고, 은희를 염려했다. 소설의 도입부를 읽고 난 후, 작가는 치매와 살인자에 대해 약간의 해설을 곁들였다. 인간이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 확신하려면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 스스로는 일관적인가. 존재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작가다운 표현으로 '어제 잠들었던 곳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일상이 꿈과 같을 것이다.' 라며 무심히 뱉어낸 그 한마디에 사고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책을 찾아 내 눈으로 다시 살인자 김병수와 함께 그의 기억을 더듬었다. 분량은 길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해 댄다. 살인자의 독백을 담은 문장에는 감정이 없지만 그의 감정이 느껴진다. 살인자의 사고(思考)를 담아낸 이성적인 표현은 세세하였고 너절하지 않았다.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나에게 이런 말끔한 문장을 써내는 작가가 더없이 위대해 보였다. 시종일관 독자를 몰입해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전개해내는 작가의 재능이 부러웠다. 김훈 작가의 문장을 읽던 어느 날, 존경과 함께 느꼈던 무언의 패배감처럼, 작가의 재능이란 날 때부터 점지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영화로 소개된 이야기가 궁금해서 영화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졌다. 개봉한지 몇 달이 지난 탓에 상영관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늦은 밤 소파에 반쯤 누워 캔맥주를 손에 들고는, IPTV의 리모컨에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김병수와 함께 그의 기억을 더듬는다. 




■ 본문 중에서


- 17p.

카그라스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뇌의 친밀감을 관장하는 부위에 이상이 생길 때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가까운 사람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더이상 친밀감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예컨대 남편은 갑자기 아내를 의심한다. "내 마누라 얼굴을 하고 꼭 내 마누라처럼 구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누가 시킨 거지?" 얼굴도 똑같고 하는 일도 똑같은데 아무래도 남처럼 느껴진다. 낯선 사람으로만 보인다. 결국 이 환자는 낯선 세계에 유배된 것과 같은 기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얼굴의 타인들이 모두 함께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믿는다.

그날 이후로 은희는 자신을 둘러싼 이 작은 세계, 나와 자신만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낯설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같이 살았다.



- 51p.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일이 없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니 자꾸 예수 믿느냐고 묻는다.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 57p.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 92p.

은희는 모른다. 내가 추구하던 즐거움에 타인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타인과 어울려 함께하는 일에서 기쁨을 얻어본 기억이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안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어갔고, 그 안에서 오래 지속되는 쾌락을 찾았다. 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이 햄스터를 사들이듯이, 내 안의 괴물도 늘 먹이를 필요로 했다. 타인은 그럴 때만 내게 의미가 있었다. 노인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즉각적으로 그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웃는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기를 무방비로 내준다는 뜻이다. 자신을 먹이로 내주겠다는 신호다. 그들은 힘이 없고 저속하고 유치해 보였다.



- 94p.

나는 조용한 세상이 좋다.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너무 많은 표지판, 간판,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무섭다.



- 105p.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 - 나 같은 인간이 더 위험하지.


- 147~148p.

눈을 뜨기가 어렵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중략)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문학동네, 2013


살인자의 기억법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3.07.24
상세보기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얼마 전부터 출퇴근 시간에 차 안에서 '책 읽는 시간'을 듣고 있다. 출근길 운전 중에 무료함을 없애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김영하 작가의 팬이 되고 말았다. 몇 에피소드에서는 작가 본인의 소설을 직접 읽어주기도 하는데, 작가의 호흡으로 읽어주는 이야기는 몇 배 더 매력이 가미되기에 해당 에피소드는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곤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본인의 소설을 단 한 권 밖에 읽을 시간이 없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겠냐고 물어온다면 그는 주저 없이 "검은 꽃"이라는 소설을 고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확고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모험이었으나 과테말라와 멕시코에 머물며 취재를 하며 소설의 첫부분을 썼고,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완성했다. 서울에서 뒷부분을 쓸 무렵에는 격렬한 깊은 감정의 격동을 작가로서 처음 경험해보았다는 고백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작가가 읽어주는 이 소설의 첫 부분을 듣고 나니,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1905년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로 떠난 이들의 이야기. 인물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소설의 형식도 형식이거니와, 개성 강한 각 인물들의 행동과 사건이 손에 잡히는 것처럼 흥미롭게 묘사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열녀문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던 한 세기 전, 여성의 권리라고는 발설할 수조차 없던 그 시절에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여인, 왕족의 딸 이연수. 여러 인물들 가운데서도 연수와 소년 이정의 이야기는 세대를 뛰어넘는 절절한 로맨스로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작가는 소설을 써나갈 무렵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으로 달려가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독자인 나는 책의 다음 페이지를 빨리 읽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으니, 분명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무언가를 홀리는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 본문 중에서


 # 14  - 55p.


사간동의 집에서 이연수는 자기 몸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몸은 그저 거기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사용할 뿐이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히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가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조상에게서 왔으면 아비와 남편을 위해 살다 그 명이 다하는 순간 혼백이 된다고 가르쳤다. 모든 사대부가 여자들이 배우고 납득하는 것을 그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모의 뼈와 살로부터 자신이 비롯되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너무 위험한 생각이었으므로 차마 발설하지 못한 그녀의 내심은,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산다, 는 것이었다. 남편이 죽으면 자살을 강요받고 그 죽음의 대가로 와에게서 열녀문을 하사받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여자가 저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 될 것은 무어냐.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에 남녀가 따로 있으랴. 비록 얌전히 앉아 십장생을 수놓고 있었지만 열여섯 소녀의 머릿속엔 시대가 용납하기 어려운 위험한 사고가 자라나고 있었다. 구체적인 실현 방도가 없었기에 그녀의 의지는 더욱 강렬해졌고, 그러느라 이연수는 상대적으로 제 몸의 변화에는 애써 눈을 감았다. 달거리가 시작되고 수유가 가능할 정도로 가슴이 나오고 얼굴의 젖살이 빠져나가는데도 그럴수록 그녀는 관념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 42  - 167-68p.


이종도는 말했다. 폐하께 편지를 쓰는 중이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흘린 피눈물을 두 눈으로 보아 잘 알고 있다. 이 멕시코에도 분명 우편제도가 있을 터이다. 누가 메리다까지만 나가 이것을 부치기만 한다면 폐하께서 곧 방도를 마련하실 것이다. 개 돼지도 이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으리라. 이종도의 말에, 지난 석 달, 아니 배를 탔을 때부터 계산하면 거의 반년간의 고통이 떠올라 몇몇은 벌써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한 명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쭈볏거리며 이종도 곁에 서 있는 진우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를 위한 일이니 사양치 말고 보태 쓰시게. 그러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돈을 내놓았다. 집으로 돌아가 쌀을 퍼온 사람도 있었다. 진우는 그것을 정중히 사양했다. 이종도는 안으로 들어가 다시 궤짝 앞에 앉았다. 처음으로 글을 배운 보람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글을 읽고 쓰는 일의 소박한 즐거움을 느낀 바 없는 이종도였다. 그것은 언제나 의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이종도의 머릿속으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수많은 글귀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아버지, 다시 돌아가면 우리 모두 일본으로 끌려가 비참하게 죽게 되리라 하셨잖습니까? 이종도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보다야 못하겠느냐. 설마 네 손바닥이 톱날처럼 갈라지도록 일을 시키기야 하겠느냐. 애비가 잘못 생각했다.



 # 59  - 239p.


이보시오. 농장에서 얻은 자식은 그 농장주의 것이오. 그 여자가 누구의 것이오? 농장주인 내 것이오. 그런데 그 여자가 애를 낳았소. 그럼 그건 누구의 것이오? 방화중이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는 아버지의 것으로 간주됩니다. 메넴이 시가에 불을 붙였다. 여기는 당신네 나라가 아니오. 그리고 그가 정말 그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과연 당신들이 증명할 수 있겠소? 왜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아이에게 아버지의 성을 붙여주는 줄 아시오? 그래야 아버지들이 제 자식이라고 믿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기 때문이오. 다시 말해 성은 아버지들의 불신에 대한 사회적 대가라는 거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남자들은 열 달 전에 저지른 어떤 일의 결과로 아이가 나온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20세기가 밝아왔는데도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오. 오직 확실한 것은 어미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뿐이오. 멕시코의 아시엔다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고 심지어 불필요하오. 메리다로 돌아가 물어보시오. 법률도 나의 편이오. 법은 애매한 것을 좋아하지 않소.


메넴은 제 나름의 고급한 유머로 불청객들을 격퇴한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아졌다. 반면 메리다로 돌아온 한인들과 변호사는 그 문제에 관한 한 농장주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멕시코와 유카탄의 법률은 메넴의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모든 법률가가 농장주인 곳에선 송사를 벌여봐야 희망이 없었다.



 # 72  - 272p.


시간이 흘렀다. 아주 오래 전에 잊어버린, 그 격심한 고통과 환각이 그를 찾아왔다. 형체 없는 어둠이 말했다. 나는 너를 대신하여 죽은 자다. 최선길은 손을 저었다. 아니야, 누가 누구를 대신하여 죽는단 말이야. 도대체 당신은 누구야? 누구냔 말이야?  형체는 최선길의 목을 졸랐다. 나는 네가 죽인 자들의 예수다. 최선길은 발버둥을 쳤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소? 그들은 죽일 만하니까 죽였소. 그리고 내가 그들을 죽이기 전부터, 저 일포드 호에서부터 당신은 내 목을 졸랐소. 아, 제발 그 손 좀 치우시오. 숨막혀 죽겠소. 형체는 말했다.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다르다. 죄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죄를 모르는 것이 바로 너의 죄다.


그는 눈을 떴다. 어느새 광장이었다. 어깻죽지가 뽑힐 듯이 아파왔다. 발등은 누군가 인두로 지지는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라워라. 그는 공중에 떠 있었다. 벌써 죽은 것일까? 그러나 아니었다.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옆을 보니 이그나시오 벨라스케스가 십자가에 묶인 채 광장 바닥에 누워 있었다. 대머리 사내가 히죽거리며 망치로 벨라스케스의 손바닥에 못을 박고 있었다. 그제서야 최선길은 왜 어깻죽지가 이토록 아픈지를 알았다. 그는 양팔을 벌린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중력 때문에 몸은 자꾸 아래로 처져내렸다.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피가 겨드랑이를 적셨다. 대못에 관통당한 발등은 그악스런 다족류가 파고들어 먹어치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팠다. 최선길은 다급히 외쳤다. 이것들 보시오. 나는 예수도 믿지 않고 멕시코 사람도 아닙니다. 나는 조선인입니다. 나는 구경꾼이오. 살려주시오. 제발! 한 사람이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분명히 말했다. 너는 우리를 때리고 강간하고 죽였다. 너는 죽어야 한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었다. 최선길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부에나비스타 농장의 마야인 노동자였다.



 # 77  - 306p.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왜놈이나 되놈으로 죽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이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차라리 무국적은 어때? 돌석이 말했다. 이정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 거야. 그러니 우리만의 나라가 필요해.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 무국적이 되려고 해도 나라가 필요한 거라구.

이정의 논리는 어려웠다. 그들을 설득한 건 논리가 아니라 열정이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기묘한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되지 않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들은 신전 광장에 띠깔 역사상 가장 작은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신대한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국호는 대한과 조선뿐이었으므로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작가의 말  - 354-355p.


나는 내 소설 속의 인물들이 거쳐갔음직한 곳을 일일이 훑고 바로 그곳에서 먹고 자며 천천히 전진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카탄 반도로, 유카탄 반도에서 띠깔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과테말라 남부의 안티구아란 도시에 머물며 소설의 상당 부분을 썼다. 과테말라의 관광 캐치프레이즈는 “영원한 봄의 나라(The Land of Eternal Spring)”다. 북부의 밀림과는 달리 남부의 고원지대엔 정말 일 년 내내 봄날씨가 계속된다. 그래서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땐 못 견디게 지루했는데 어쩌면 이런 소설을 쓰기엔 적합한 도시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곳에서 매일 일정량의 소설을, 마치 전국대회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육상 선수처럼 꾸준히 썼다.

서울에 돌아와 스타벅스에 들렀더니 안티구아 커피원두를 팔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안티구아엔 스타벅스가 없는데 스타벅스엔 안티구아가 있었다. 스타벅스는 과테말라의 플랜테이션에서 마야인들을 고용해 커피를 길러 그것을 서울 광화문에서 팔고 있었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에 소설의 제목을 정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우울했다.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이 모든 과정이 비로소 끝난 것이다. 이제 다음 소설을 생각해야한다.



<검은 꽃>
김영하
문학동네, 2003

검은 꽃 - 2004년 제3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0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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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 연보 - 204~205p.


1922년 5월 8일 대구 출생(음력)

1933년 성 유스티도 신학교 예비과 입학(대구)

1941년 3월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乙組) 졸업

1941년 4월 일본 도쿄 조치(上智)대학교 입학(유학)

1944년 1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학업 중단

1947년 9월 혜화동 성신대학 편입

1951년 9월 15일 사제 수품, 안동성당 주임

1953년 4월 대구대교구 교구장 비서

1955년~1956년 김천성당 주임 겸 성의 중고등학교장

1956년~1963년 독일 유학,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전공

1964년~1966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5월 31일 주교 수품, 마산교구장에 오름

1968년 5월 대주교로 승품, 제12대 서울대교구장

1969년 3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 서임 (당시 47세, 전 세계 추기경 134명 중 최연소)

1970년~197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1차 역임)

1975년~1998년 평양교구장 서리 겸임

1981년~198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2차 역임)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과 103위 시성식 개최 (여의도)

1998년 5월 29일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 퇴임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옹기장학회'를 공동 설립

2009년 2월 16일 선종 (향년87세), 안구 등 장기 기증



# 인생덕목 - 49~52p.


一. 말 (言)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까지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二. 책 (讀書)

수입의 1퍼센트를 책을 사는 데 투자하라.

옷이 해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三. 노점상 (露店商)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깎지 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것이다.


四. 웃음 (笑)

웃음을 생활화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빵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 하고, 젊은이를 동자(童子)로 만든다.


五. TV (바보상자)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 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六. 성냄 (禍)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ㄱ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七. 기도 (祈禱)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 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 하며 만생을 요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八. 이웃 (隣)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 짓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봐야 한다.


九. 사랑 (慈愛)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에는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 82p.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기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중략)



# 창조와 순리 그리고 사랑의 표현 - 159p.


민주주의는 만들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활력 속에서

화합이 이루어질 때 창조되는 것입니다.

정의 또한 규격품으로 배급되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순리로 흐르고 넘치게 해야 합니다.

복지는 소외된 이웃 형제들에 대한 모든 사람의 사랑 표현이어야 합니다.



<바보가 바보들에게>

김수환 

산호와진주, 2009


바보가 바보들에게
국내도서
저자 : 김수환
출판 : 산호와진주 200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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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가자, 일어나

에드: 난 두고 가요 (Leave me here...)

       난 걸음이 느려요, 두고 가요.

앨리슨: 포기하지마

에드: 다리가 부러졌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에요.

앨리슨: 안부러졌어. 걸을 수 있잖아.


에드: 괜한 일을 했나봐요.

앨리슨: 무슨 말이야?

에드: 아이를 그냥 둬야 했는지도 몰라요.

앨리슨: 뭐라고?

에드: 내 말 잘 들어봐요.

        애가 왜 여기있죠?

        왜 동유럽 여자아이가 스코틀랜드 한가운데에 있죠?

앨리슨: 난 모르겠어. 알면 말해봐.

에드: 유괴된 거에요. 교복차림이잖아요.

        분명히 학교 밖에서 유괴되었겠죠.

        대부분 돈을 원하잖아요.

        어떤 경우엔... 다른 공모자들도 있어요. 경찰이라던가...

        만약 우리가 일을 그르치는 거라면요?

        애가 무사히 돌아갈 수 없다면요?

        애가 죽는다면요?

        그게 다 우리 탓이라면요?


앨리슨: 아이를 봐!

에드: 난 그저...

앨리슨: 아이를 보라고!

          땅속에 놔둘 수 있겠어? 응? (Could you?)

에드: 아뇨.

앨리슨: 그게 정답이야. (It's your answer.)

           가족이 그랬냐고?

           유괴를 당했냐고?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일이야.

           지금은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야, 일어나.

           길을 찾아.



<A Lonely Place to Die, 2011>

감독 줄리안 길베이

출연 멜리사 조지, 에드워드 스펠리어스

2011




가장 평범한 이름 '김지영'. 작가는 평범한 여성의 삶을 대변하려고 가장 평범한 이름을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김지영씨의 딸 지원이보다 다섯 살 많은 딸이 있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과격하지 않고 세련되게 표현한 조남주 작가. 태어날 때부터 30대 중반이 된 지금 이 순간까지 수도 없는 불합리와 편견에 감정을 소모하게 되는 주인공 김지영. 그녀는 출구가 없는 거대한 미로 속에서도 징징거리지도 않고, 매번 내뱉고 싶은 말을 삼키며 담담하게 상황을 모면한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여사우의 복지를 위해 어린이집도 운영하고, 모성보호 제도를 운용하고, 대부분의 여직원들이 육아휴직을 꽉 채우고 돌아온다. 비교적 남녀가 평등한 회사에서 나는 차별받지 않는 터울 안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다가도, 더듬어 생각해보면 여자는 사회의 여러 가지 제도, 회사의 복지제도 등 법적인 테두리, 보호의 테두리를 만들지 않으면 남자와 동등한 사회생활은 꿈도 못 꾸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역시 평등을 논하기에는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결혼을 포기하고, 육아를 포기하고 점점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요즘. 아직도 가정 내에서 잃는 것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어야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 1995년~2000년


- 61p.

"따뜻한 거 많이 먹어야 한다. 옷도 따뜻하게 입고."

아버지께 꽃다발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었고, 가족들과 케이크를 자르며 파티를 열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엄마, 언니, 여동생과만 공유하는 비밀일 뿐이다. 귀찮고 아프고 왠지 부끄러운 비밀. 김지영 씨네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직접 언급을 피하며 라면 국물만 떠주었다.

그날 밤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언니의 옆에 누워 김지영 씨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차분히 되짚어 봤다. 월경과 라면에 대해 생각했다. 라면과 아들에 대해, 아들과 딸에 대해, 아들과 딸과 집안일에 대해 생각했다.



- 109p.

몇 번의 시도 끝에 얼핏 육각형 모양이 살아 있는 커다란 눈송이가 남자 친구의 검지 끝에 살며시 앉았고, 김지영 씨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너 회사 잘 다니게 해 달라고.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사회생활 잘하고, 무사히 월급 받아서 나 맛있는 거 많이 사 달라고."

김지영 씨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성기게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한데 서늘하다. 남자 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면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 123p.

대표는 업무 강도와 특성상 일과 결혼 생활, 특히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여직원들을 오래갈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원 복지에 힘쓸 계획은 없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거시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 그동안 김지영 씨와 강혜수 씨에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두 사람을 더 신뢰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아 할 일이 많은 남자들에게 굳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 우리 모두의 김지영, 김고연주 - 183~184p.


김지영의 삶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목소리를 삼키는 모습이다.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 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 94p.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100~101p.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 116p.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순간들이었다. 김지영 씨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족 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 133~134p.


그럼 너두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겉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 138p.


김지영 씨는 나도 당당하고, 먹고 싶은 음식 다 잘 먹고 있다고, 그런 건 아이의 성별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열등감으로 보일 분위기라 그만두었다. - 142p.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장편소설

민음사, 2016


82년생 김지영
국내도서
저자 : 조남주
출판 : 민음사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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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다닌다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자 꿈꾸는 백두대간 종주. 『하얀 능선에 서면』은 종주 1세대라 불리는 여성 산악인 남난희 씨의 종주 등반기를 담은 이야기다. 책의 말미에는 등반 보고서의 형태로 식량, 운행, 대원 등에 대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으며, 본문의 내용은 70여 일이 넘는 기간 동안 홀로 종주를 이어가던 저자의 일기 형태로 채워져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1984년. 여자 혼자의 몸으로 동계 종주를 이어가던 그녀가 산에서 홀로 느끼는 감정의 기복은 실존적이고, 감정이입하지 않을 수 없이 생동감이 전해진다.


이제 산에 다닌 지 일이년 남짓 된 병아리 주제에 '나는 산에 왜 가는가?'라는 겸연쩍은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힘든 산행을 할 때면 어김없이 '오늘, 산에 왜 왔지?'라는 답없는 질문도 던져보곤 했다. 누가 부추기지도 않았고 부득불 혼자 결정해서 다니는 산행인데 누구 탓이라도 하고픈 알 수 없는 심리. 설산에서 홀로 잠들며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저자의 산행기에서 내 '알 수 없는 심리'와 비슷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그녀가 종주를 했던 당시에는 태백산맥이라는 개념으로 부산의 금정산에서 진부령까지의 코스를 등반했으며, 이는 현재의 백두대간 종주 코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태백산맥이라는 용어는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산악론(朝鮮山嶽論)'에서 처음 생겨났으며 우리나라 전통적인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칭한다. (아래 개념도 참조)


(출처: 데일리안)


지리산권 (7개코스,142,2km)

천왕봉→장터목산장→촛대봉→세석산장(8,1km)→선비샘→벽소령→연하천산장→총각샘→토끼샘(1,2km)→뱀사골산장→

임걸령→노고단→고리봉→헬기장(23,6km)→만복대→정령치→수정봉→임망치(24,9km)→여원재→고남산→상사바위→

매요마을(21,2km)→이실재→새맥이재→시리봉→복성이뒤재→꼬부랑재(21,4km)→봉화산→월경산→중고개재(21,8km)

 

덕유산권(8개코스 219,4km)

중고개재→백운산→육십령(28,4km)육십령→바위지대→서봉→남덕유산→삿갓봉→삿갓골재(20,5km)→두룡산→동엽령→

중봉→헬기장→빼재(35,5km)→삼봉산→초점산→대덕산→쑥병이(30,6km)→삼도봉(13,7km)→질매재→바람재(29,2km)→

비로봉→ 여시골산→궤방령→모리골→가성산→눌의산→당마루(29,2km)→사기점→갈현고개→국수봉→큰재(32,3km)

 

속리산권(8개코스 185,1km)

큰재→백학산→선유골→지기재(33,3km)→신의터고개→화령산→봉황산(33,3km)→비재→828고지(3,1km)→형제봉→

속리산 천황봉→문장재→눌재(27,3km)→청화산→조항산→고모치(13,8km)→대야산→분란치재→장성보→헬기장(24,9km)→

은치재→구왕봉→희양산→시루봉→이만봉→981고지(21,8km)→백화산→황악산→조봉→이화령(18,1km)

 

소백산권(7개코스 196,7km)

이화령→조령산→마패봉→조령3관문→부봉→하늘재(30,1km)→포함산→대미산(24,9km)→황장봉→벌재→저수재(28,8km)→

배재→싸리재→뱀재→묘적령→도솔봉→죽령(37,1km)→연화봉→소백산(비로봉)→국망봉→상월산→1272고지(27,7km)→

마당치→고치령→미내리→ 마구령(27,1km)→마구령→늦은목이→석달산→박달령(21,0km)

 

태백산권(8개코스 181,6km)

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11,3km)→구룡산→고부령→장바위(26,5km)→태백산→화방재→함백→1233,1고지(26,8km)→

매봉산→피재→한의령→ 새맥이(32,7km)→덕향산→큰재→댓재(20,5km)→두타산→청옥산→고적대(24,0km)→이기령→

상월산→987.2고지(21,2km)

 

오대산권(6개코스 133,0km)

987.2고지→백봉령→지병산→생계령(22,3km)→석병산→두리봉→삽당령(22,5km)→석두봉→화란→닭목재(23,8km)→

고루포기산→능경목→대관령(22,3km)→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20,9km)→소황벽산→노인봉→진고개(21,2km)

 

설악산권(8개코스 181,1km)

진고개→동대산→두로봉(14,9km)→신배령→만월봉→음복산→약수산→구룡령(25,8km)→갈전곡→쇠나드리(32,3km)→

조침령→북암령→단목령→4거리(24,2km)→점봉산→망대암산→한계령→샘터(25km)→끝청→대청봉→희운각→산장→

마등령(21,6km) →저항령→미시령(14,4km)→삼봉→신선봉→마산→진부령(23,4km)→향로봉(거리포함안됨)

 

計: 도상거리 672km, 실제거리 1,240km, 총구간 52개코스 (코스 출처: 산림청)





# 글쓴이의 말 - 9~10p.


6년이 지난 지금, 나의 심정은 다시는 그 같은 등반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단지 태백산맥의 나머지 구간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제외된다. 그때는 이번 산행을 경험했으니까 좀더 여유있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좀더 유연하게, 어쩌면 즐기는 산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기 종주등반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직접 체험으로 겪었으니까...... 마음의 여유만 잃지 않는다면, 즐거움도 없지 않으리라.

만약 그때도 단독 등반을 해야 된다면 철저히 혼자이고자 한다. 지원대는 내게 모든 희망이기도 했지만 부담이기도 했다. 직접하는 행위와 서포트하는 행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원대는 아무 보상없이 계속 베풀어야만 하니까 그것도 많은 부담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다시는 혼자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 서로 미워하고 증오까지 하더라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



# 궁하면 통한다 


- 42p.

나는 벅차기만 했다. 가슴은 자꾸 주체할 수 없이 울렁대고, 설레이고, 자랑하고 싶고, 응석 부리고 싶고, 웃고 싶고, 눈이 마주치고 싶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누구에겐가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린애가 따로 없다는 표정으로 나의 투정을 다 받아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텐트는 두 동이 쳐졌고 밥 냄새가 났고 모닥불도 피웠다.


- 44p.

난 무엇을 힘들어 하는 걸까? 행위 그 자체일까? 아니면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 때문일까? 어쩌면 두 가지 다 해당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 총각은 군에 갔다 왔는가 - 49p.

 

난 항상 그래왔듯이 헤어지는 걸 못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고맙고, 수고했다는 둥 그리고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등의 말을 해야 되는데, 난 가슴에만 그 말을 남긴 채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 점아 점아 콩점아 - 90~91p.


뽀얀 안개 위로 두둥실 떠있는 산은 꼭 구름 같았다. 난 저 구름을 타고 하늘로라도 올라갈까, 산은 움직인다. 조용히, 굽이굽이 이어진 이 산들 나 혼자 눈으로 나 혼자 마음으로 간직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누구 나눠줄 사람 없을까? 누구 함께 할 사람은 없을까? 누구라도 좋다. 다만 벅찬 가슴을 나눠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살아서 숨쉬는 산, 아침 저녁으로 표정이 변해 있는 산.

두고개라는 곳에 표지판이 있었다. 그래도 주왕산 국립공원이라고 표지판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원동 2킬로미터, 기사동 2킬로미터'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이정표, 그래도 이정표가 있으니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다.

길은 비교적 잘 나있고 잡목과의 싸움이 없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옛날 생각, 지원조와 만날 생각, 갑자기 외로움 하나가 예리한 칼날이 되어와 온몸 안을 오르내렸다.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손가락과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도 이 고독 속에 자신이 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꼼짝할 수도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나는 스르르 무너져버림을 느꼈다. 울어볼까? 소리쳐 볼까? 하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고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내 국토를 알겠다고? 맥을 찾겠다고? 아무것도 아니다. 난 내 육신을 학대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나? 무얼 버리려 하나?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 사람사는 세상을 홀로 그리며 - 113~114p.


산짐승 소리 하나 없는 밤은 너무나 고요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혼자라는 것이 때로는 좋기도 했지만 별로 좋지 않기도 했다. 항상 긴장해야만 하고, 그 대상이 무엇이든 항상 불안하고, 무엇이든 혼자 결정해야만 하고, 혼자 걷고, 혼자 생활하고, 나름대로 익숙해지는 일도 있고, 나름대로 잊혀져가는 일도 있었다.

편한 대로 간단히 해결하는 자질구레한 일도 있었고, 세수나 양치질 같은 것은 생략해도 탓할 사람없는 산생활은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 혼자의 담은 높아만 갔다. 나름대로 꼭 해야 할 일, 지켜야 될 것들은 철저히 지키고자 했다.

혼자의 담은 세상의 어떤 남보다 더 견고할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담, 그 담이 무너지지 않게 난 또 아집을 부릴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자신에게 너무 인색했다. 자신에게 항상 긴장해 있을 것을 요구하며 완벽하고자 하며 남에게 뒤지기 싫어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너무 학대하는 버릇이 있다.

산행도 은밀히 따지고 보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즐기는 산이 아닌, 이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따르자면 무리가 있기 마련인데 그 무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산을 다닐 것인가? 어쩌면 나의 이번 등반이 끝나면 산을 그만 다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 태백을 먹고 사는 사람들 - 148p.


바라보며 시를 읊고, 술을 마시고, 경치를 즐기는 산.

하지만 세월은 흘러 오르는 산으로 탈바꿈했다. 인간은 항상 어딘가에 올라가고 싶어했고 정상에 자신이 존재하기를 원했다. 산은 인간의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다 알기라도 하듯 자신의 정상을 공개하려 들었다.

산사람이 산을 올라가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 산에 들면 그 산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일부 이외에는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라보는 산, 정말로 술이라도 한 잔 마셔가며 저 멋진 산을 보며 시라도 쓰고, 바라보는 산으로 만족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이 산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 태백산맥 2천리 - 176p.


산은 나를 마음껏 농락하고 있었다. 내 의지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철저히 자기방식대로 나를 부리고 있었다. 내가 벗어나고자 하면 할수록 산은 올가미를 죄어왔다.

내가 하는 행동은 하나의 몸부림일 뿐이었다. 처절한 몸부림. 산은 인간의 뜻과 의식은 아랑곳없이 나를 시험하려 들었다. 산의 질서를 교란시키려는 인간은 용서하려 들지 않았다. 산은 초연했다. 산은 완고했으며 웅장했다. 산은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했다. 산은 또 ---



#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200p.


누구에게라도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누구라도 좋았다. 싸우고 싶었다. 흠씬 두들겨 맞았으면 차라리 좋겠다. 무엇이라도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 시작한 일이니 누구를 두고 원망한단 말인가?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겠다며 다시 일어 섰다.

하루 종일 눈에서 허우적대기만 했더니 지친 것은 고사하고 까진 발이 몹시 쓰려왔다. 눈은 많이도 오지 않았고 사각사각 내 옷깃만 스칠 뿐이었다. 경쾌한 리듬이었다. 눈이 무슨 얘긴가를 열심히 하는 듯했다. 이런 날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낮잠을 자면 얼마나 달콤할까? 온 산에 핀 설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사를 모르는 사람처럼, 감격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모든 감정은 얼어붙고 메말라가고, 영혼이 달아난 사람처럼 무감각 상태인 자신이 불쌍했다.

오직 걷는 노예가 되어, 짐의 노예가 되어, 산의 노예가 되어 걷기만 할 뿐이었다. 전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까마득했고 그 흔한 유행가 한 구절 못 주절대며 오늘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 하얀 능선에 서면 


- 237p.

바람이 불었다. 첩첩산중에서 혼자 기진한 채 배낭도 내리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산은 무엇인가? 산은 내게 무엇인가? 등산이 건강에 좋다고 했는가. 마음이 넓어진다고, 순수한 스포츠라고, 누가 그렇게 호화로운 수식어를 썼는가?

정신, 육체, 고통, 비교? 어림없는 소리, 너무 편해서 하는 소리, 이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고문이다. 지옥이다. 죽음이다. 나는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겠다. 지옥에 가겠다. "아아, 하느님, 부처님, 산신령님, 나 좀 도와주십시오. 내게 힘을...... 차라리 울 수 잇는 용기를 주십시오."

나는 왜 헤어나지 못하는가? 왜 이런 고통을 혼자서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하는가? 난 힘이 없다. 꼼짝할 수 없었다. 산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꼼짝없이 산의 노예가 되었다. 내 의지대로는 한 발걸음도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 겸손할께요.'

날이 저물었다. 또 집을 지었다. 나는 쓰러지듯이 텐트 안으로 넘어졌다. 비로소 운다. 뜨겁게 뜨겁게 --- 또 눈이 온다. 걱정할 기력도 없다.


- 242p.

점봉산에서 바라본 설악은 정말 좋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산, 설악은 많은 것을 안고 있다. 공룡능선을, 가야동계곡을, 용아장성을, 옥녀봉을, 천화대를, 범봉을, 잦은바윗골을, 칠형제능선을, 석주길을, 설악골을, 울산암을, 나한봉을, 12선녀탕을, 귀때기청봉을, 에델바이스를, 오세암 전설을, 백담사를, 백운동계곡을, 선녀봉을, 화채릉을, 대청봉을, 토왕폭을, 눈을, 바람을, 구름을, 아아, 젊은 산쟁이의 한을...... 눈을 감으면 손에 잡힐 듯한 설악의 모든 것이다.





<하얀 능선에 서면>

남난희

수문출판사, 1990


하얀 능선에 서면
국내도서
저자 : 남난희
출판 : 수문출판사 200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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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규: 자기 생각 펼치기에는 산문이 좋지. 시는 가급적 빼라. 인민을 나약한 감성주의자로 만드는 거 문학 아니야.


여진: 아니. 좀 더 보고.


몽규: 볼만한 게 있어?


처중: 이거는 필력이 있긴한데, 이광수 선생 작품 같다.


몽규: 이광수, 채남선 같은 변절자들 따라하는 글들. 다 내다버려.


동주: 너, 이광수 선생 작품만 봤었자나


몽규: 그건 어렸을때 얘기지


동주: 지금도 마찬가지지.

       관습과 이념에 사로잡혀서 함부로 단정짓는거. 


몽규: 관습과 이념을 타파하자고 하는 일이야.

       왜, 시를 빼자고 해서?

       내가 이 문예지를 하는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어.

       시를 무시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동주: 시도... 자기생각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몽규: 그런 힘이 어떻게 모이는데?

       그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문학속으로 숨는거 밖에 더되니?


동주: 문학을 도구로 밖에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문학을 이용해서 예술을 팔아서 뭐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누가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애국주의니, 민족주의니, 뭐 공산주의니 그딴 이념 원리에 모든 가치를 팔아버리는 거 그게 관습을 타파하는 일이야?

       그것이야 말로, 시대의 조류에 몸을 숨기려고 하는 썩어빠진 관습 아니겠니...


(중략) 


몽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거면 문학이 무슨 소용이오



<동주 (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2015>

감독 이준익

출연 강하늘(윤동주), 박정민(송몽규) 

2016



히말라야 랭클링라에 자리 잡은 12,000.15m의 럼두들 세계 초등에 도전하는 등반기를 다룬 코믹 소설이다. 요기스탄이란 나라에 자리 잡은 M자를 거꾸로 놓은 듯한 산맥의 두 봉우리 럼두들(12,000.15m)과 노스 두들(10,500m). 이 두 봉우리를 혼동한 나머지 다른 봉우리에 잘못 오르고, 크레바스에 빠지기를 수차례, 늘 포터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결국 럼두들 등정에 성공하지만 포터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등반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인물들의 코믹한 성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친절하지만 눈치 없는 등반대장 바인더. 늘 길을 헤매는 길잡이 정글. 필름을 햇빛에 모두 노출시켜 사진은 모두 잃고, 렌즈는 모두 깨뜨려 촬영을 멈춘 촬영 담당 셧. 153과 워튼즈워플에 집착하는 소망(wish)인지 진실(truth)인지 매사 구분이 모호한 과학자 위시. 물개 트래버스와의 웃지 못할 애정 스토리를 가진 포터 담당 콘스턴트. 그리고 갖은 병치레를 다하는 팀닥터 프로운.


히말라야를 찾는 이들, 특히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원정대들이 등반 성공 후 한 잔 걸치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카트만두, 타멜 거리의 럼두들 바(Rum doodle Bar). 다음에 네팔을 찾으면 꼭 들러야겠다.




#1. 팀 - 19p.


럼두들 등반대원들은 다음과 같다.


영국 육군 병참단 소령인 벌리. 보급담당. 수많은 산에서 보여준 엄청난 인내심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힘이 장사라서 선발된 인물. 꽤 높은 산에 오른 경험 있음. 휴가를 맞아 알프스에 올랐다가 우리와 합류하기 위해 하산했다.

우리 등반대의 과학자인 크리스토퍼 위시. 암벽등반 능력이 뛰어남. 좀 높은 산에 오른 경험 있음. 안데스 산맥에 첫 등정해서 성공한 뒤 막 돌아왔다.

사진촬영 담당인 도널드 . 빙벽 타기 솜씨가 뛰어남. 보통 정도의 높은 산들을 오른 경험이 있음. 최근에 로키 산맥에서 돌아왔다.

무선 전문가이자 등반길 안내자인 험프리 정글. 그럭저럭 높다고 할만한 산들을 오른 경험 있음. 코카서스 산맥을 등반하다 연락을 받고 돌아왔다.

외교관이자 언어학자인 랜슬럿 콘스턴트. 포터 관리 담당. 특히 사교 수완과 인간관계가 좋은 점 때문에 선발되었음. 앞으로 높은 산들을 오를 것으로 기대됨. 아틀라스 산맥을 등정한 뒤 막 돌아왔다.

등반대 주치의이자 산소 전문가인 리들리 프로운. 아주 높은 산들을 오른 경험 있음. 히말라야에 올랐다가 우리 등반대의 출발 시한에 맞춰 가까스로 돌아왔다.



#3. 랭클링라로 출발 - 43p.


20일째 되던 날, 한 심부름꾼이 달려와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 산적들에게 붙잡혔음. 몸값으로 5천만 보히를 보내주기 바람, 정글. "

30일째 되던 날, 또 다른 심부름꾼이 달려오더니 다시 소식을 전했다.

" 반복함. 산적들에게 붙잡혔음. 5천만 보히를 보내주기 바람, 정글. "


우리는 첫 번째 심부름꾼이 돈을 갖고 튀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한참 심사숙고한 끝에 이 지역 사람들의 정직성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수두를 앓다가 완전히 회복된 프로운에게 돈을 갖고 심부름꾼을 따라가 달라고 부탁했다.
40일째 되던 날, 정글 혼자 우리한테 와서 산적들이 프로운의 몸값으로 5천만 보히를 요구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건 너무 과다한 요구였다. 나는 우리 등반대의 재정능력으로는 더 이상의 그런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믿을 만한 심부름꾼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하게 했다.

"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파산했음. 대사관가 접촉하기 바람. "


#4. 빙하 - 54p.

"저 멍청이가 글쎄 나침반의 걸쇠 푸는 걸 까먹었어요. 그러니 어느 방향으로 가든 나침반은 늘 북쪽을 가리켰죠."
나는 말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사람은 믿어줄 때 최고의 성과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불신하는 것만큼 사람을 기죽이는 것은 다시없다. 정글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훗날 본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등반대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내가 남달리 너그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너그러움은 리더가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자질 중 하나다. 세상의 리더들 중에는 그런 자질들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갖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정글이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으리라 믿고 그 휴식 시간이 끝난 뒤 그를 다시 맨 먼저 내보냈다.
그는 실제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우리가 네 시간 가량 앞으로 나아간 뒤 나는 정글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드넓은 크레바스 가장자리에 모여 있는 광경을 봤다. 정글은 그 안에 들어가 이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정글의 나침반이 그를 그쪽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그렇게 해서 그 크레바스를 만나자 그는 의심스러운 방향으로 길게 돌아가느니 차라리 그 밑으로 내려가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단다. 


#12. 아직 충분히 높지 않다 - 185p.

아무런 장애물도 눈에 띄지 않아 나는 몹시 놀랐다.
우리는 정상에 서 있었다!
이번 등반의 여정에서 나는 두 번째로 내 정신을 의심했다. 럼두들의 높이는 12,000.15미터다. 그런데 내 고도계나 나 자신이 미치지 않은 이상 우리는 현재 10,500미터 지점에 와 있엇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그러다 나는 깨달았다. 동쪽 저편으로 거대한 산이, 그 산의 번쩍이는 정상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내 머리 위로 1,500미터나 우뚝 솟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산을 오른 것이다.


#15. 럼두들이여, 안녕 - 213~214p.

저물녘의 태양은 지평선 아래로 침몰했다. 우리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수많은 고봉으로 이루어진 황막한 산지는 수많은 음영의 조화로 이루어진 거대한 심포니였다. 그 밑에는 칠흑같이 새까만 강 골짜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청록빛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우뚝 선 럼두들 봉만이 마지막 햇살을 받고 있었다. 얼음과 눈밭으로 덮인, 그 깎아지른 듯한 벼랑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몰의 빛깔로 붉게 타올랐다.
장엄한 산과 작별하는 수순으로는 아주 제격이었다.





<럼두들 등반기>

W.E. 보우먼 (Wiliam Emest Bowman) 지음, 김훈 옮김

은행나무, 2014


럼두들 등반기
국내도서
저자 : W.E.보우먼 (William Ernest Bowman) / 김훈역
출판 : 은행나무 201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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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학교 4주차 "산악 문학"수업. 2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심산 선생님 소개해주는 산악인과 산서를 따라가다 보니 이내 빠져들었고, 짧은 수업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심산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산서를 따라 읽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는 산서들의 리뷰를 엮어 직접 쓰셨다는 『마운틴 오딧세이』를 찾아 읽었다. 유쾌한 입담만큼이나 과연 달필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산서들을 몇 차례나 읽으셨는지 저자의 심리와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심리까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스무 권이 넘는 산서들과 함께 그 배경 지식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산악인에 얽힌 이야기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포장된 책이었다. 그야말로 산이 만든 책이었고, 책 마디 마디에서 산을 느낄 수 있었다. 소개된 모든 산서들이 좋은 느낌으로 나에게도 아로새겨졌다. 따라 읽을 산서들이 또 한바닥 늘어났다.




#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


『난다 데비』, John Roskelly(존 로스켈리), 1987

『파미르, 폭풍과 슬픔』 로버트 크레이그/성혜숙, 수문출판사, 1989

『레카피툴라티오』 김성규 장편소설, 미세기, 1995

『꿈속의 알프스』 임덕용, 평화출판사, 1982

『타오르는 산』 오마르 카베싸/황진우, 청년사, 1986

『신들의 트래버스』 봅 랭글리/김일모, 신어림, 1995

『죽음의 지대』 라인홀트 메스너/김영도, 평화출판사, 1985

『내 청춘 산에 걸고』 우에무라 나오미/곽귀훈·김성진, 평화출판사, 1994

『빙벽』 이노우에 야스시 장편소설/김석희, 현대소설사, 1991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앨버트 머메리/오정환, 수문출판사, 1994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장호 산시집, 평화출판사, 1981

『북한산 벼랑』 장호 산시집, 평화출판사, 1987

『별빛과 폭풍설』 가스토 레뷔파/김성진, 평화출판사, 1990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모리스 에르족, 수문출판사, 1997

『자일 파티』 닛타 지로 장편소설/주은경, 일빛, 1993

『하얀 능선에 서면』 남난희, 수문출판사, 1990

『71일 간의 백두대간』 길춘일, 수문출판사, 1996

『영광의 북벽』 정광식, 수문출판사, 1989

『역동의 히말라야』 남선우, 1999

『엄마의 마지막 산 K2』 제임스 발라드/조광희, 눌와, 2000

『8000미터 위와 아래』 헤르만 불/김영도, 수문출판사, 1996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조 심슨/정광식, 산악문화, 1991

『남부군』 이태, 두레, 1988

『K2-죽음을 부르는 산』 김병준, 평화출판사, 1987

『히말라야의 아들』 자크 란츠만/김정란, 세계사, 2000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카이 페르지히·슈테판 글로바츠/유영미, 중앙M&B, 2001

『14번째 하늘에서』 예지 쿠쿠츠카/김영도·김성진, 수문춢ㄴ사, 1993



# 서문 - 6p.


책을 내다 버릴 때 나의 기준은 극히 단순하다. 이 책을 다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다. 제 아무리 세계적 평판을 얻은 저서들일지라도 다시 들춰볼 일이 없다면 한낱 진열품이요 지적 허영심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두 번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내다 버려도 그만이다. 좀 더 잔혹하게 말하자면, 두 번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나의 이 자의적이되 지극히 잔혹한 선별기준을 언제나 만족시켜주는 책은 오직 산서뿐이다.



# 죽음의 지대, 라인홀트 메스너 - 75p.


메스너는 티롤지방에 위치해 있는 커다란 고성(古城)에 산다. 어느 날 잠깐 앞마을에 외출을 갔다가 돌아온 메스너는 자기가 열쇠를 안 갖고 나온 채 문을 걸어 잠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통사람이라면 당연히 열쇠수리공을 불렀겠지만 그는 세계 최강의 클라이머 메스너다. 그는 이까짓 성벽쯤이야 하는 생각에 맨손으로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결과는? 성벽 중간쯤에서 얼토당토 않게 슬립을 먹어 떨어지는 바람에 발목에 금이 갔다! 농담이 아니다. 몇 년 전 국내신문의 해외토픽란에 가십처럼 실렸던 실화이다. 인류 최초로 8000m급 14봉을 모두 오르고 살아 돌아온 세계 최강의 클라이머가 자기 집 담을 넘다가 추락했다?



# 빙벽(氷壁), 이노우에 야스시 


- 91~92p.

그 서정성은 도시인의 내면세계 및 정서와 엄격하게 대(對)를 이루며, 그래서 이해받지 못한 자의 고독 혹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연상케 하는 절대적 기개를 느끼게 한다. 산과 도시는 너무 다르다. 산악인과 도시인은 서로 다른 인종이다. 이 두 세계 사이에는 결코 화해할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것이 『빙벽』이다.


- 96p.

고사카는 등산가다. 등산가인 그가 친구와 암벽을 오르면서 자살할 리가 없다. 그것은 산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동인 것이다. 등산가는 산을 위해서는 생명을 내던지지만, 속세의 인간관계를 청산하려고 산에서 생명을 끊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앨버트 머메리 - 101p.


알피니스트들은 다만 '산에 오르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알피니즘이란 곧 '고도의 위험이 농축되어 있는 유희'이자 '무상의 행위' 인 것이다.



# 자일 파티, 닛타 지로 - 150p.


자일 파티란 무서운 것이다. 두 존재를 맺어주고 있는 자일이란 우정을 넘어서 사랑이고 운명이며 불가사의한 교감이다. 도시코는 그 환청을 듣고 미사코의 죽음을 확신한다. 어렸을 때부터 '울지 않는 아이'로 불리웠던 도시코는 그 순간 넋을 잃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신랑은 도시코를 오해한다. 너무 행복에 겨워 우는 것이겠거니 넘겨짚고는 그녀를 달래려든다. 그러나 남편이 아니라 그 누구라해도 필생의 자일 파티를 떠나보내는 절망과 슬픔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심산

풀빛, 2002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산이 만든 책, 책 속에 펼쳐진 산)
국내도서
저자 : 심산
출판 : 풀빛 200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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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畵像(자화상) - 22~23p.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랑 바람이 불고 가늘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億(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1939年 9月




# 무서운 時間(시간) - 42~43p.


거 나를 부르는것이 누구요、


가랑잎 잎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呼吸(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


나를 부르지마오。


- 1941年 2月 7日



# 눈 감고 간다 - 49p.


太陽(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 1941年 5月 31日



# 별헤는 밤 - 54~57p.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追億(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하과

별하나에 憧憬(동경)과

별하나에 詩(시)와

별하나에 어머니、어머니、


어머님、나는 별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小學校(소학교)때 冊床(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佩(패)、鏡(경)、玉(옥) 이런 異國 少女(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서 애기 어머니된 게집애들의 이름과、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비둘기、강아지、토끼、노새、노루、『푸랑시스 · 짬』、 『라이넬 · 마리아 · 릴케』、 이런 詩人(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이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 1941年 11月 5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지음

한국교과서, 20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복제(영인)본
국내도서
저자 : 윤동주
출판 : 한국교과서(주)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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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 산에 가지 못하던 아쉬움을 산악 영화를 보거나 등반기들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며 지냈다. 제법 시간이 흘러 다시 등산학교에 왔다. 첫 주차 교육을 마치고, 각기 다른 이유로 등산학교를 찾았지만 같은 조의 인연으로 만난 동기 교육생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등산학교를 찾으셨어요?' 처음이라는 어색함도 잠시, 서로 궁금한 질문들을 쏟아놓고 저마다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지난해 등산학교 히말라야 과정을 다녀온 나의 이야기와 고산 등반 이야기도 안줏거리로 올랐다. 


이야기는 흘러 히말라야에서 찰나의 순간에 고(Go), 백(Back)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 그 판단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천금같이 귀하게 얻은 원정 등반의 기회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음을. 그런 어려운 결정들을 하는 산악인들의 담대함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보셨어요?' 

'우리나라 산악인들, 멀지 않은 곳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렇게 전해들은 이야기. 


다음 스토리 펀딩을 찾아 궁금했던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 그러다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저자와 인연이 있는 강사를 담임으로 둔 덕에, 저자 친필 사인본이라는 행운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2006년 한국 여성으로는 다섯 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곽정혜님. 어린 나이에 겪었을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그저 문장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2006년 5월 18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저자.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에서 만날 수많은 에베레스트를 잘 넘을 수 있기를... 나 또한 응원한다.




# 사선 - 31p.


텐트 안에 눕혀지던 순간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밤새 정신을 차렸다 혼절하기를 반복했기에 그날 밤 있었던 일들은 뚝뚝 끊어진 필름처럼 몇 장면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눈을 뜰 때마다 목구멍으로 따뜻한 물이 조금씩 흘러들어 왔고, 또 어떤 때는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고 있기도 했다. 새벽녘이 되자 더 이상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슴푸레 밝아 오는 여명 속에서 눈을 떴다.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는 텐트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고, 산소마스크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신선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등에서 느껴졌다.

2006년 5월 19일 아침,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 왼손- 153p.


내 인생에도 앞으로 무수한 에베레스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잠시 넘어졌다고 해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패일 터. 실수는 할지언정 실패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이를 악물고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기묘했던 3캠프에서의 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친구들이 나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라 '위험이 닥쳐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 DAUM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2172/episodes 



<선택>

곽정혜 지음

종이와 붓,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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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저자 : 곽정혜
출판 : 종이와붓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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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돌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석기시대가 종말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석기시대가 끝나게 된 것은 더 나은 기술인 청동기가 석기를 몰아냈기 때문이다. 바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청동기 시대를 맞아 도구를 만드는 목적으로 더는 쓰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마차 시대가 끝난 것은 말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내연기관(휘발유와 디젤)이라는 상위의 기술을 가진 자동차와 20세기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마차 운송산업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말은 아직 사라지지 안았다. 대중 운송수단의 목적으로는 더는 쓰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현재의 서유, 가스, 원자력의 시대는 석유나,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이 고갈되기 때문에 종말을 맞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위의 기술과 제품 구조, 비즈니스 모델이 이러한 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에너지 자원, 제품,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릴 때 종말을 맞을 것이다. 태양력, 풍력, 전기자동차, 자율 주행 자동차 등의 새롭고 강력한 기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에너지 산업을 무너뜨리고 붕괴시킬 것이다. - 18p.



<에너지혁명 2030>

토니 세바(Tony Seba) 지음, 박영숙 옮김

교보문고, 2015


에너지 혁명 2030
국내도서
저자 : 토니 세바(Tony Seba) / 박영숙역
출판 : 교보문고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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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2는 1978년 미국 최초로 K2 등정을 성공한 짐 위크와이어(Jim Wickwire, Seattle 변호사)와 루이스 라이하르트(Louis Reichardt,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K2(8,611m)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산으로 카라코람(Karakoram) 산맥, 파키스탄에 위치한다. K2라는 이름은 1856년 헨리 고드윈 오스턴이 카라코람 산맥의 두 번째 봉우리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으로 다른 봉우리도 K1(마셔브룸산), K3(브로드피크산), K4(가셔브룸 2봉), K5(가셔브룸 1봉) K1-5라는 이름에서 각각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에베레스트에 비해 높이는 낮지만 등반의 난이도는 더 높고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1975년 처음으로 K2 등반을 시도했을 때 팀원 7명이 사망하고 짐 위크와이어는 6,700m 고지를 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다시 찾은 K2에서 1978년 9월 6일 루이스 라이하르트와 함께 정상 등정에 성공했지만, 해가 지기 전 하산을 마치지 못하고 8,200m의 고도에서 텐트, 침낭, 물도 없이 비박(bivouac)을 하게 된다. 산소 또한 바닥이 났고, 가스스토브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극단적인 추위 속에서 밤을 보낸 그는 저산소증, 동상, 폐부종 등 심각한 상태로 아침을 맞게 된다. 다음날 정상 등정을 성공한 존 로스켈리(John Roskelley)와 릭 리지웨이(Rick Ridgeway)가 그를 발견했고, 파키스탄 군대 헬리콥터로 수송되어 구출된다. 위크와이어는 폐 혈전으로 수술을 받았고, 발가락 2개를 잃었지만 후에 에베레스트, 맥킨리 등 등반을 계속했다.


영화에서 변호사 테일러는 친구 해럴드(H, 교수)와 K2 등정을 성공하지만, 하산 도중 해럴드가 추락해 심각한 골절을 당하는 사고를 당한다. 캠프와의 통신 두절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친구를 버릴 수 없던 그는 해럴드와 함께 하산을 하며 위기 상황을 맞지만, 구조 헬기에 발견된다.




H: 나는 여기서 죽을 거야


테일러: 넌 죽지 않아


H: 난 걷지 못해


테일러: 내가 데려갈거야


H: 그건 불가능해. 게다가 묶을 수 있는 로프도 없어


테일러: 내려가서 일행을 불러올게


H: 네가 성공해서 돌아올 때면 난 죽어있을거야

     ... ...

    이걸 신디에게 전해줘 

    사랑했고 미안하다고 전해줘


테일러: 네가 얘기해


H : 난 걷질 못해 어서 받아서 내려가

     여기서 함께 죽겠다는 거야? 말도 안돼!


테일러: 내가 너에게 뭘 원하는지 알아?


테일러: 넌 내 유일한 진짜 친구야. 여기서 버려 둘 순 없어

           난 그러고는 못살아


H: 넌 항상 이기적이 되는 덴 전문가였자나

    왜 이제와서 그러는 건데?


테일러: 그래도 소용없어

          ... ...

          네겐 아내와 아이와 연구가 있지.

          정말 부러워

          난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아왔어

          내 일은 거짓말과 협상과 악당들과 거래지

          너와 산에 오르면 고상함을 찾을 수 있어

          평생 이기주의자이긴 싫어

          나도 우아한 걸 갖자구


H: 고상한 걸 원하면,우아한 걸 원하면... 돌아가


테일러: 친구를 산에 버리고 와서 내가 살 수 있겠니!



<K2>

1991

감독 프랭크 로덤

출연 마이클 빈, 맷 크레이븐 




태초에 어둠과 적막이 있었다.

그 어둠과 적막은 신과 함께있었고


'나'가 나타나자 '나'에게로 왔다.



<달팽이의 별; Planet Of Snail, 2012>

감독 이승준

출연 조영찬, 김순호

2012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

이 연인의 사랑은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우주에서 가장 빛난다. 

등산학교 4주차 산악문학 수업 - 심산 선생님의 추천 산서 목록

틈나는 대로 한 권씩 읽어보려 한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는 영준 샘이 추천해주신 "사람의 산"

한동안 읽을거리가 풍성해져서 부자가 된 기분이다.


[사진출처 : 교보문고]



# 해외의 산악문학 작가


레슬리 스티븐 - 유럽의 놀이터

에드워드 윔퍼 - 알프스 등반기

하인리히 하러 - 티베트에서의 7년, 하얀 거미

모리스 에르족 - 최초의 8000미터 안나프루나

가스통 레뷔파 - 별빛과 폭풍설, 암과 설

발터 보나티 - 내 생애의 산들

크리스 보닝턴 - 퀘스트, 세계의 대탐험

라인홀트 메스너 - 세로 토레, 죽음의 지대, 검은 고독 흰 고독

피터 보드맨, 조 태스커 - 창가방 그 빛나는 벽




# 한국의 산악문학 작가


이은상 - 조국강산, 길 따라 물 따라

김영도 -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산의 사상

손경석 - 한국등산사, 회상의 산들

김장호 - 한국명산기,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이용대 - 등산 도전의 역사, 그곳에 산이 있었다

박인식 - 사람의 산, 백두대간

임현담 - 은빛 설산, 히말라야 순례자

허긍열 - 몽블랑 익스프레스, 알프스에서 온 엽서




# 심산 선생님의 추천도서

 

이용대 <등산, 도전의 역사> 해냄, 2017

손재식 <한국바위열전> 마운틴북스, 2008

박인식 <사람의 산> 바움, 2003

정광식 <영광의 북벽> 이산미디어, 2012

주영 <얄개바위> 정상, 2002

김장호 <한국백명산기> 평화출판사, 2009

최원석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한길사, 2014

김영도 편역 <하늘과 땅 사이> 사람과 산, 2000

발터 보나티 <내 생애의 산들> 김영도 역, 조선매거진, 2012

우에무라 나오미 <청춘을 산에 걸고> 김성연 역, 마운틴북스, 2008

라인홀트 메스너 <벌거벗은 산> 김성진 역, 이레, 2004

윌리엄 보우먼 <럼두들 등반기> 김훈 역, 마운틴북스, 2007




# 한국의 산서 BEST 30 (2017년 1월 한국산서회 선정)


01. 정광식 <영광의 북벽> 수문출판사, 1989

02. 헤르만 불 <8000미터 위와 아래> 김영도 역, 수문출판사, 1996

03. 김병준 <K2, 죽음을 부르는 산> 평화출판사, 1987

04. 라인홀트 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 김영도 역, 이레, 2007

05. 에드워드 윔퍼 <알프스 등반기> 김영도 역, 평화출판사, 1988 

05. 심산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풀빛, 2002

05. 김장호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평화출판사, 1995

08. 조 심슨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정광식 역, 산악문화, 1991

08. 예지 쿠쿠츠카 <14번째 하늘에서> 김영도/김성진 역, 수문출판사, 1993

10. 리오넬 테레이 <무상의 정복자> 하루재클럽, 2016

10. 우에무라 나오미 <내 청춘 산에 걸고> 김성진/곽귀훈 역, 평화출판사, 1994

12. 발터 보나티 <내 생애의 산들> 김영도 역, 조선매거진, 2012

12. 라인홀트 메스너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김성진 역, 평화출판사, 1991

12. 박정헌 <끈> 열림원, 2005

15. 우에무라 나오미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곽귀훈 역, 평화출판사, 1989

15. 박인식 <사람의 산> 말과 글, 1988

17. 존 크라카우어 <희박한 공기 속으로> 김훈 역, 황금가지, 1997

17. 모리스 에르족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최은숙 역, 수문출판사, 1997

19. 손경석 <회상의 산들> 성문각, 1971

19. 김장호 <한국명산기> 평화출판사, 1993

19. 남난희 <하얀 능선에 서면> 수문출판사, 1990

19. 남선우 <역동의 히말라야> 사람과 산, 1998

19. 임덕용 <꿈 속의 알프스> 평화출판사, 1982

19. 이용대 <그곳에 산이 있었다> 해냄, 2014

25. 김영도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수문출판사, 1990

25. 가스통 레뷔파 <설과 암> 변형진 역, 교진사, 1973

25. 김영도 <산의 사상> 수문출판사, 1990

28. 장 코스트 <알피니스트의 마음> 손경석 역, 평화출판사, 1994

28. 안데를 헤크마이어 <알프스의 3대 북벽> 이종호 역, 수문출판사, 1989

28. 김윤우 <북한산 역사지리> 범우사, 1995




# 그 밖에 


악돌이, 박영래

PEAK, 홍성수 글, 임강혁 그림

산(원제: 岳), ISHIZUKA SHINICHI

신들의 봉우리(원제: 神々の山嶺), 유메마쿠라 바쿠 글, 다니구치 지로 그림

K(케이), 다니구치 지로



링크 : http://www.emount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45 



# 살아 돌아오는 것이 자랑이어야 한다


_그래도 살아 돌아와야 한다 – 69p.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의 젊은 산악인 8명이 히말라야에서 희생되었다. 2011년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이 목숨을 잃었고 같은 해 촐라체 북벽에서 김형일, 장지명 등이 유명을 달리했다. 2012년엔 에베레스트에서 송원빈이 희생됐다. 연이어 2013년에는 칸첸중가에서 박남수가 가고 에베레스트에서 서성호가 목숨을 잃는 등 너무나 많은 희생자를 냈다.

해마다 꽃다운 나이의 수많은 젊은 산악인이 히말라야에 도전하다 목숨을 잃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죽음과 마주했던 끔찍한 일들을 기억하면서도 히말라야에 오르려 하는 것일까?

등반에 몰입하다 보면 고도와 완등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등산은 살아서 돌아옴으로써 완성된다. 성과를 얻는 것은 등산의 목적이 아니다. 생명의 존귀함을 알고 살아 돌아오는 것 자체가 자랑이어야 한다.

등산은 힘겨운 상황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한계를 타파하는 행위이지 죽고 사는 문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성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한다.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떨쳐버리는 것이 최선책이다. 우리는 앞서 간 이들이 목숨을 바쳐 일깨워준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자일과 자일샤프트 – 71p.

나와 동료의 체온이 녹아 있는 줄이 자일이다. 독일어로는 베르크자일(berg seil)이라고 하며 보통은 그냥 자일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꼬르드(corde), 영어로는 로프(rope)라 부르며, 자일을 함께 묶고 등반하는 동료를 자일샤프트(silschaft), 꼬르데(cordée), 로프트 파티(roped party) 등이라고 한다. 



# 알피니스트의 초상 – 181p.

그는(박영석) “어려움이 없는 등산 행위는 뜻을 잃고 만다”라고 생각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덤벼들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만남, 그것이 바로 등산이라고 정의하며 살았다. 어떤 악조건하에서 어떤 곳을 어떤 방법으로 올랐는가 하는 것이 등산의 방법이자 목적이라고 외치며 끊임없이 산을 찾아다녔고 그것이 산악이느이 숙명이라고 말했다.



# 고미영을 보내며 


_ 놀라운 투지와 열정으로 자신만의 ‘산’을 올랐던 산악인 – 189p.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등반을 가지고 폄훼할 일도 아니다. 메스너에게는 메스너의 산이 있고 쿠쿠츠카에게는 쿠쿠츠카의 산이 있듯이, 고미영에게는 고미영의 산이 있다. 고미영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만의 산을 만들어왔다.

한번 목표를 설정하면 온몸을 던져 자신을 불사르던 그의 활기찬 모습은 이제 볼 수가 없지만, 실의와 좌절을 겪으며 현실에서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생과 발자취를 보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 뜨겁고 강한 한국 여성의 힘 – 196p.

꿈과 목표가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어떤 길이든 스스로가 선택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자신의 세계를 열 수 있다. 고 고미영, 오은선, 김영미, 김점숙, 채미선, 한미선, 이진아, 배경미 등은 그런 길을 걸어가는 여성들이다.



# 에드먼드 힐러리 , 거인과 만나다


사랑과 겸손의 아이콘 – 200p.

“모험의 세계에서는 상황이 나쁘게 전개될 경우 일단 물러나는 것도 용기라고 본다. 후퇴는 전진을 위한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메스너도 고산에서 상황이 악화되자 일단 하산한 후 재등반을 시도했다”라고 말하며, 에베레스트에서 무산소 등반을 실현한 메스너와 하벨러를 두고 강인한 등산가라고 극찬했다.



# 노산 이은상, 그의 행적을 돌아보다 – 223p.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 산악인의 선서


헤르만 불, 8000미터 위와 아래

제임스 힐튼, 잃어버린 지평선


<그 곳에 산이 있었다>

이용대

해냄출판사, 2014


그 곳에 산이 있었다
국내도서
저자 : 이용대
출판 : 해냄출판사 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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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이미 봤을수도 있겠지만, 그냥 이거 보니까 언니 생각나서..."

이전날 저녁 늦은 시간까지 메신저로 추석 일정 이야기, 휴가 이야기, 그밖의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
그리고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자는데 메신저 알람 소리에 일어났더니 
<애쓰지 말고 시간을 쓰세요!> 라는 세바시 강연 영상 링크가 도착해있었다.

'나의 서연이는 어디 있을까...?'


그래!

요즘 생각이 뒤죽박죽 정신이 없다.

정리를 좀 해야겠다.

애쓰지 말고...


애쓰지 않겠다면서

또 책은 읽겠답시고

회사 도서관에서 책장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눈에 들어온 책.


"애쓰지 말고 즐겨!"

아... 

맞아...

나 애쓰지 않기로 했지.



세상은 자극적인 것으로 틈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지만

최악은

안에서 짓누른 에너지를 얻으려고 서로 이용하는 것. – 37-39p.





느긋해지는 세 가지 습관 – 113p.


  1. 멈추기_ 멈추면 스트레스로 생기는 행동이 멈춥니다.

  2. 감각에 충실하기_ 느낌으로, 더 풍부한 데이터를 향해 지각을 엽니다.

  3. 놓아버리기_ 놓아버림으로써 정보에서 새로운 방법을 끌어냅니다.


 

#1 멈추기 – 129p.


  - 훈련: 멈춰야 하는 것을 기억하기

  - 걸림돌: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 도움이 안 되는 믿음: ‘밀고 나가야 해.’ ‘인생은 고역’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일은 원래 재미없는 거야.’

  - : 즐겁지 않은 때를 알아채기. 흐름을 타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2 감각에 충실하기 – 139p.


  - 훈련: 마음에서 벗어나기

  - 걸림돌: 조바심

  - 도움이 되지 않는 믿음: ‘할 일이 너무 많아.’ ‘일해야 되는데.’ ‘감각에 충실하는 건 이기적이고 쓸모없는 짓이야.’

  - : 근육을 키우듯 집중하고 감정에 충실해지는 연습을 하세요. 안팎으로 감지되는 감각들을 순수한 언어로 설명하세요. 정확히 표현해봐요. 알게 되는 것에 좋고 나쁨을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세요.

 


#3 놓아버리기 – 149p.


  - 훈련: 포기

  - 걸림돌: 무력감

  - 도움이 되지 않는 믿음: ‘계획이 있었는데.’ ‘이게 필요해.’ ‘이걸 안 하면 난 끝장이라고.’

  - : 얼마나 자주 속으로 해야 된다고 중얼대는지 보세요. ‘해야 해’ ‘그이는 해야 해대신 나는 해도 돼’ ‘그이는 해도 돼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일을 해도 돼다른 일을 해도 돼라고 말하면 폭이 더 넓어지겠지요?

 





게으른 구루가 알려주는 일곱 가지 게으름 비법 – 155p.


  1. 친절 베풀기

  2. 침대 명상

  3. ‘해야 되는데버리기

  4. 지저분한 것 청소하기

  5. 긴장 내려놓기

  6. 몰입하기

  7. 소통하기

 



애쓰지 말고, 즐겨! – 246-249p.


자신에게 공간을 주는 데 익숙해지면,

모든 상황과 관계는 잘될까라는 걱정이나 스트레스 없이 나름대로 풀린다는 걸 알게 됩니다.


프로젝트든, 과제든, 공동 작업이든, 아이디어 내기든,

세상 모든 것은 저절로 자라서 완벽하게 전개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을수록

더 술술 풀립니다.


때로 마법같이 느껴질 거예요.

때로 더 공을 들여야겠지만, 어디서나 그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되기 시작할 거고요.



<저 게으름뱅이는 무엇이든 잘한다>

로런스 쇼터 지음, 공경희 옮김

예담, 2017


저 게으름뱅이는 무엇이든 잘한다
국내도서
저자 : 로런스 쇼터 / 공경희역
출판 : 예담 2017.07.07
상세보기




하켄을 치고 안전을 확보한 후

돌아올라간 그곳에 G4의 정상이 있었다.

2시 27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산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곳엔 우리가 있었다.

한없이 외롭지만 미치도록 자유로운 우리가 있었다.


(중략)


사진: 네이버 영화



해외에서는 우리가 G4에 최초로 만든 루트 '코리안 다이렉트' 때문에 특집기사가 나가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하산 중에 발생한 캠프2의 붕괴로 정상 필름이 일부 유실되었고, 

그것 때문에 국내 산악계 일부에서는 

정상까지의 표고차 5m의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상 등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별안간 거짓말쟁이가 되고만 우리는 상처를 받았다.

주위에서 반론을 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와 등정 시비를 가리기 위해 산을 오른 적이 없다.

대단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산을 오른 적도 없다.

개인적인 명예나 영화를 위해 오른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정상에 올랐다.

무슨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저 높은 산의 정상을 올랐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저 산을 오른 것일까.

세상은 산을 오른 산악인에게 정복이라는 말도 안되는 표현을 쓴다.

역사 이래 인간은 한 번도 산을 정복한 적이 없다.

산이 가끔 정상에 설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산을 오르내린지 벌써 40년.

더 높이 오를수록, 더 많이 오를수록

나는 점점 작아져가고

산들은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커져가는 산 앞에서 작아질 수 있는 나는 행복하다.


사진: 네이버 영화



꽃피는 4월에 진달래 향기가 진 뒤

무 더운 매미 소리가 녹음에 묻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름을 덮었던 푸르름이 

가을의 화려함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산.

그 산은 오늘도 인구 천만 명의 대도시 서울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북한산. 

그리고 인수봉.


그곳이 있었기에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던 우리의 젊음은 행복했었다.

바위에서 미끄러져 손등이 까지고 멍이 들어도

바보처럼 낄낄대며 로프를 둘러메었고

어슴푸레한 가스등 아래 앉아

골짜기의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었다.

철없던 그 시절의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 젊은 날의 분노를 식혔고

더 높은 산을 꿈꾸며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올랐던 우리.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중 한 명을 또 다른 산에 눕혀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We were there>

감독 박준기

출연 유학재, 조성대, 김동관 등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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